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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은행권 ‘파이어족’

한승주 논설위원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의 영어 앞 글자에서 따온 ‘파이어(FIRE)족.’ 이들은 늦어도 40대 초반에는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지출을 극도로 줄이고 소득의 70% 이상을 저축해 은퇴 자산을 만들어간다. 은퇴 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꿈을 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젊은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국내에도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본 젊은 세대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핵심은 돈인데 얼마가 있어야 자발적인 조기 퇴직을 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보통 부동산을 제외하고 금융자산만으로 연간 생활비의 25배를 모으는 것이 목표다. 한 달 생활비로 300만원을 쓴다면 연간 3600만원의 25배인 9억원이 필요하다. 이를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해 연 5~6% 수익을 내면 매년 4%(3600만원) 정도는 생활비로 사용해도 물가상승에 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경기 침체 속에 물 건너간 얘기인 줄 알았는데 요즘 은행권이라면 파이어족의 꿈을 이뤄줄 것 같다. 역대급 수익을 낸 은행들이 줄줄이 희망퇴직을 받고 있고, 그 대상은 점점 어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신한은행의 신청 대상은 1983년 이전 출생 직원.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39세에도 스스로 퇴직할 수 있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젊은 직원들이 노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대상 확대를 요구해 와 이를 반영했다고 한다. 은행권엔 특별퇴직금 등 조건이 좋을 때 떠나자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2022년 1인당 평균 퇴직금은 5억4000만원이다. 하나은행에는 올 상반기 11억3000만원을 받고 인생 2막을 시작한 퇴직자도 있다. 조건이 좋으니 지난 연말연초 5대 은행에서만 2222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누구는 두둑하게 한몫 챙겨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으리라. 하지만 가만히 앉아 이자 이익으로 떼돈을 번 은행들이 퇴직금 잔치를 벌이는 것을 지켜보는 ‘영끌’ 서민들은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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