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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아키하바라 예고 살인 사건

태원준 논설위원


2008년 6월 8일 오전 5시20분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키하바라에서 사람을 죽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먼저 차로 돌진하고, 차를 쓸 수 없게 되면 나이프를 사용할 겁니다. 모두 안녕.” 7시간 뒤 도쿄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서 2t 트럭이 횡단보도의 행인 5명을 덮쳤고, 택시와 충돌해 멈춰 서자 트럭에서 내린 이는 단검을 꺼내 지나가던 이들을 마구 찔러댔다. 7명이 죽고 10명이 부상했다. 인터넷에 적은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됐다.

일본의 대표적 ‘도리마’(거리의 악마란 뜻. 묻지마 칼부림을 지칭)가 된 아키하바라 살인범 카토 토모히로(당시 25세)는 어려서 학대당한 기억과 비정규직 생활의 염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왜 차와 칼이었을까? 그는 센다이 트럭 폭주 사건(2005년)과 아라카와오카역 칼부림 사건(2008년 3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진술했다. 특히 아라카와오카역의 묻지마 칼부림은 그의 범행과 유사점이 많았다.

범죄는 이렇게 모방을 통해 전염되는데, 그제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에도 차와 칼이 사용됐다. 스물세 살 범인은 승용차를 몰고 번화가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치었고, 차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내려서 칼을 휘둘렀다. 그가 아키하바라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지, 아직 진술이 없으니 단정할 순 없지만, 끔찍한 수법이 놀랍도록 흡사해 더 섬뜩하다.

토모히로의 ‘차와 칼’을 떠올리게 하는 서현역 테러가 벌어지자, 이번엔 그의 ‘온라인 예고’를 본뜬 듯한 살인 예고 글이 하루 만에 15건이나 속출했다. ○○역에서 몇 명을 어떻게 죽이겠다는 글이 전국을 무대로 작성돼 인터넷에 올라와서 그런 곳마다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고 있다. 추리소설 소재로만 여겼던 ‘예고 살인’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 세상이 점점 스릴러가 돼가고 있다. 아키하바라 사건 이후 일본에는 ‘예고IN’이란 사이트가 등장했다는데, 범행·자살 예고 글을 자동으로 찾아내 수집한다는데, 우리도 만들어야 하는 건가….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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