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설

[사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우리도 안심할 때 아니다

미국 신용평가사 피치. EPA연합뉴스

3대 국제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2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렸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의 증시가 이틀째 약세를 보였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이 전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언하기 어렵다. 12년 전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리자, 미국 주가는 일주일 만에 15%포인트, 한국은 17%포인트 급락했다. 다만 이번 신용등급 하락의 충격은 2011년보다 작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 경제 성장세가 견고하고 미국 국채를 대신할 다른 대안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목할 것은 피치가 신용등급을 내린 이유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국가운영체계) 악화 등을 등급 하향조정 이유로 들었다. 국가에 빚이 많은데, 이를 관리할 정부와 정치의 운영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피치의 이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더 왼쪽, 공화당은 더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가운데가 무너지고 있다”며 “벼랑 끝 전술과 정치 양극화 상황은 국가부채 한도 증액 논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권은 부채 한도 증액으로 갈등을 빚으며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임박해서야 증액에 합의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31조4000억 달러(약 4경1699조원)에 달한다.

피치가 꼽은 미국의 재정·거버넌스 악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상황을 생각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국가채무는 4년 만에 400조원이 늘어나 지난해 1000조원이 넘었고, 올해는 1100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향후 4년간 채무 이자만 100조원에 달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달러를 찍어 빚을 갚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형편도 아니다. 세계 104개 국가가 나랏빚을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 논의를 본격화했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법제화는 기약이 없다. 올해 세수 결손이 4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야당은 수십조원의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정부·여당은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 외국 기관들이 평가하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갈수록 하락하는 중이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고 국가경쟁력은 하락하는데, 정치는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