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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울 도심 묻지마 칼부림… ‘외로운 늑대’ 테러의 전형

매년 느는 ‘묻지마’ 80%가 중범죄
자생적 테러범 출현 원인 찾아내야
이 사건부터 심리부검하듯 분석하길

신림역 인근 흉기 난동으로 20대 남성을 살인한 혐의로 체포된 조모씨가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들어오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울 신림동에서 행인 네 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칼부림 사건은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였다. 서른세 살 범인은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사람이 많은 곳을 택했다”는 진술과 피해자가 모두 젊은 남성이란 사실 등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짙은데, 그는 달아나지 않았다. 현장 주변에 앉아 있다가 저항 없이 체포돼선 “남들도 (나처럼)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것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개인적 불만을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로 표출한 ‘외로운 늑대’가 범행 이후를 생각하지 않은 채 범행 자체에 목적을 두고 ‘사회적 테러’를 벌인 사건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곳이었다면 그의 범행이 칼부림에 그쳤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범행 동기와 행태 모두 미국에서 걸핏하면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켜 숱한 목숨을 앗아가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2010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외로운 늑대가 미국 사회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 요소”라고 규정했다. 이제 한국도 그런 이들이 벌이는 예측 불가의 테러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회가 돼가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는 살인 등 중범죄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사이코패스의 난동이란 시각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외로운 늑대는 사회에 속해 있지만 고립된 상태에서 불만과 분노를 키우다 반사회적 범죄자가 된 이들을 뜻한다. 칼부림 범인은 열두 살 때부터 열네 차례나 법원 소년부에 송치됐고, 성인이 돼서도 세 차례 전과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이 사이코패스 고위험군이라 할 만큼 흔치 않은 범죄 이력을 쌓는 동안 우리 사회의 교화·관리 시스템은 그가 테러리스트로 자생하는 것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그들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들을 그저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온 사회적 인식 속에서 왜 이런 이들이 생겨나는지는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CIA의 경고 이후 미국 법무부는 그간의 ‘외로운 늑대 테러’ 124건을 일일이 분석했다. 추려낸 공통점 중 하나는 어떤 형태로든 범행의 신호를 보낸다, 즉 전조 현상이 나타난다는 거였다. 이에 시민들에게 “무언가 봤다면 말해 달라”는 주문을 되풀이했고, 주변 누군가의 의심 징후를 감지한 이들의 제보 덕에 수십 건의 자생적 테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이코패스 관리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외로운 늑대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불만과 분노와 일탈이 누적된 결과물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 시스템이 포착하고 제어할 수 있는 틈을 찾아내야 한다. 당장 이번 사건부터 심리 부검에 준하는 분석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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