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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전쟁의 참상 직접 본 尹 대통령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우크라 방문 때 강력한 국방력
중요성 깨달았다는 윤 대통령
평화의 소중함과 전쟁이 남긴
처참한 상흔도 목도했을 것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
고조돼 우려의 목소리 커져
남북 간 충돌 빚어지지 않도록
윤 대통령의 유화 제스처 절실

지난달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성대한 행사가 있었다. ‘제1연평해전 전승 24주년 기념행사’였다. 2함대 측은 “제1연평해전은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역사적인 승리였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당초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이 충돌을 2008년부터 ‘제1연평해전’으로 격상해 기념하고 있다.

당시 이 해전을 직접 목도했다. 충돌이 빚어진 바로 그 아침에 연평도에 있었다. 1999년 6월 초에 북한 경비정은 연평도 앞바다의 북방한계선(NLL)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우리 군은 북한 경비정 선체 뒷부분을 부딪혀 NLL 밖으로 밀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6월 15일에 대충돌이 벌어졌다. 단순 교전이 아니라 그야말로 강력한 포화가 오가는 격한 싸움이었다. 당시 함미 밀어내기 상황을 취재하러 연평도에 파견됐다가 이 해전을 지켜보게 됐다.

15일 아침, 요란한 포성이 몇 분간 연평도를 뒤흔들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한 어민들은 항구에서 일을 하다 급히 산아래쪽으로 대피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면 사람의 얼굴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어민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시퍼렇게 질린 모습이었다. 실제로 얼굴에 옅은 녹색빛이 감돌았다. 취재 욕심에 섬 가운데 산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로 올라가 북측과 마주한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지켜봤다. 놀랍게도 바다에 있던 함선 여러 척에서 시커먼 연기가 동시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북측 어뢰정 한 척은 이미 침몰 중이었다.

잠시 뒤 군 트럭이 빠른 속도로 산으로 올라왔다. 트럭은 북측을 향해 파여진 참호를 지날 때마다 사병 1명씩을 하차시켰다. 소총을 맨 군인의 양손에 수백발의 총알이 담긴 탄환박스가 들려 있었다. 그때 참호에 남겨지던 한 젊은 군인의 얼굴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그의 얼굴도 산 아래 주민에게서 봤던 공포로 가득차 있었다. 전쟁과 죽음이라는 공포는 직전까지도 군기가 바짝 들어차 있었을 젊은 군인의 낯빛을 순식간에 잿빛으로 만들었다.

당시 충돌로 우리 측은 부상자만 있었던 반면 북한은 수십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북측이 퇴각했지만 확전과 보복 공격 가능성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며칠을 떨며 지냈다. 연평도의 군사적 긴장은 계속 이어져 3년 뒤 제2연평해전에서 우리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2010년에도 북측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군사적 충돌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전쟁은 정치인들이 일으키고, 죽는 건 애꿎은 젊은이들이란 말이 있듯 아무 잘못도 없는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숱한 젊은이들이 매일같이 죽어나가는 우크라이나 전쟁만 봐도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그 우크라이나를 최근 다녀왔다. 대통령은 포격으로 처참히 파괴된 현장을 둘러봤다. 대통령은 귀국해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며 많은 걸 느꼈다. 강력한 국방력만이 전쟁을 방지할 수 있고 평화를 지킬 수 있겠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전쟁은 일단 벌어지면 그 희생과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확인했으리라 본다.

한반도에서도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군과 민간인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 지정학적 위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반영돼 경제적 타격도 컸다. 그런데 근래 들어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재차 고조되고 있다. 핵잠수함과 전략폭격기들이 한반도를 수시로 오가고 있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말폭탄 수준도 점점 더 격해지는 양상이다. 이러다 2017년처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남북 모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윤 대통령부터 그런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작은 충돌이라도 일단 부딪히면 양쪽이 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북측이 윤 대통령의 ‘담대한 제안’을 거부했지만 제2, 제3의 담대한 제안을 계속 제안하면서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음을 꾸준히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이고, 취임 때 선서한 대통령의 의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는 27일은 정전협정 체결일이고 다음달에는 광복절이 있다. 윤 대통령이 두 기념일을 유화적인 대북 메시지를 내놓는 기회로 활용하길 기대한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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