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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재난 위기관리 매뉴얼

고승욱 논설위원


재난·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 대응, 복구에 필요한 사항을 정한 법이다. 올여름 수해 및 이태원 참사, 동해안 산불 직후 신문에 종종 나오는 매뉴얼이란 말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효율적 사고 수습과 위험 시설·지역의 안전관리를 위해 급히 만들어진 재난관리법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재난안전법으로 이름을 바꿨고,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반성하며 수년간 대대적인 정비를 거쳐 지금의 체계가 완성됐다.

흔히 말하는 매뉴얼의 정식 명칭은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이다. 재난안전법 34조 5항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장은 재난 유형에 따라 위기관리 매뉴얼을 작성·운영해야 한다’는 규정에 근거한다. 구체적으로는 기관별 임무와 역할을 담은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 어떤 조치를 어떻게 취하느냐를 정한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 현장에서의 행동 절차를 담은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이 있다. 행정안전부는 홍수, 지진의 책임 기관이고 환경부는 녹조, 수질오염,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면 국토교통부 매뉴얼에 따르고, 동해안에서 산불이 났을 때 주민 대피는 산림청이 작성한 매뉴얼대로 하는 식이다. 이런 매뉴얼이 정부 중앙부처에만 40개 가까이 있다.

매뉴얼은 법적 책임을 가늠하는 근거가 된다. 2020년 부산 초량지하차도 사고로 기소된 공무원들에게 재판부는 “매뉴얼은 있었지만 피고인들은 사고 당시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순간의 판단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재해 현장에서 매뉴얼대로 행동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평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훈련의 반복이 없다면 매뉴얼은 읽지 않고 버리는 전자제품 사용설명서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는 매뉴얼 정비 대신 얼마나 훈련해 몸에 어떻게 새겼는지 확인하겠다는 재해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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