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아직도 군인이 소모품인가

고세욱 논설위원


2020년 8월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 페이스북에 대민지원 홍보 게시물이 걸렸다. 제목은 ‘수해복구할 땐 나를 불러줘 어디든지 달려갈게’. “전국노예자랑이냐” “군인 노고를 희화화했다”는 비판에 국방홍보원은 사과문을 올렸다. 지난해 4월 강화군청은 카카오톡 채널에 ‘일손 빌려드립니다’란 제목으로 해병대 장병들의 모내기 지원을 알렸다. 장병들을 값싸게 부릴 수 있는 인력으로 여긴 것이다. 속초시는 2년 전 빌라촌 앞 제설 작업에 군인을 동원해 비판 받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특성상 군의 대민지원은 포괄적 안보 개념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군은 태풍 호우 등 자연 재해 외에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의 살처분, 코로나19 대응, 심지어 모내기 같은 지역 민원까지 맡고 있다. 군인들은 작전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공무원과 민간이 할 수 없는 영역에 투입돼야 맞다. 지금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예산도 줄이는 만능 치트키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고 보상과 대우가 충분한 것도, 병사 안전에 대한 군의 의식이 투철한 것도 아니다. 신세대 장병들이 이해 못하는 건 당연하다. 더욱이 군 수뇌부는 홍보 차원에서 대민지원에 경쟁하듯 나서고 있다. 군인 노동력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은 상황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지난 19일 경북 예천의 집중 호우 현장에서 대민지원차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렸다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군은 장갑차도 철수한 급류 지대에 로프나 구명조끼도 준비하지 않고, 구조나 수색 전담이 아닌 포병 담당을 투입했다. 채 상병 아버지는 “구명조끼도 안 입히는 군대가 어딨느냐. 기본도 안 지켰다”고 절규했다. 이는 또래 군인들, 군인 부모들, 나아가 5000만 국민 모두가 갖고 있는 의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여기에 답해야 한다. 군인에게 구명조끼도 입히지 못하는 정부, 군인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정부가 ‘멸공’이나 ‘사상 최대의 방산 수출’을 외친다 한들 진정성 있게 와 닿을리는 없다.

고세욱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