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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젠 사람이 죽어도 일하지 않는 국회

사진=뉴시스

최근 몇 년간 우리 국회가 벌여온 입법 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 이름을 딴 법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김용균법’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사고로 숨지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차량에 숨진 윤창호씨 사건을 계기로, ‘김성수법’은 잔혹한 살인범 김성수의 심신미약 주장을 계기로 처벌을 강화한 법이었다.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흉기에 숨졌을 때는 의료진을 보호하는 ‘임세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런 법률의 공통점은 그 이름이 된(또는 피해자가 된) 사람이 다 죽었다는 사실이다. 국회는 사람이 죽어야 법을 만들었다. ‘사후입법(死後立法)’이란 말이 여의도에서 상식처럼 통용됐고, 서글픈 우스개로 회자됐다. 그런데 이런 트렌드가 바뀌었다. 이제 국회는 사람이 죽어도 일하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서울 도심의 반지하 거주민이 빗물에 잠겨 비참하게 숨지는 등 30여명이 수해로 목숨을 잃었다. 국회에 도시 침수와 하천 범람 대비책을 다룬 법안이 쇄도했다. 주요 지방하천 공사를 국가 책임 아래 진행해 안전을 확보하자는 하천법 개정안, 10년 단위로 도시 침수 종합계획을 수립하자는 도시하천법 제정안, 지하 공간 침수방지시설 의무화 법안,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소하천 정보 공유 법안 등 14건이 상임위에 올랐지만,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는 바빴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노란봉투법 등 정쟁거리가 될 만한 법안과 사법 리스크니, 오염수니 하는 정쟁 이슈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정당 현수막 완전 자율화 같은 특권 법안은 악착같이 통과시키는 열정을 보였는데, 사람이 죽고 사는 수해방지 법안에 그런 열의를 보인 의원은 없었다.

21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26%에 불과하다. 19대 국회까지만 해도 40%는 되던 것이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 누군가 죽어야 법을 만들곤 했던, 그래도 죽으면 만들긴 했던 이들이 이제는 작년에 30명, 올해 50명, 도합 80명이 죽고서야 묵혔던 법안을 꺼내 들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계속 맡겨두면 앞으로 몇 명이 죽어야 법이 만들어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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