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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을축년 대홍수

고승욱 논설위원


환경부 한강홍수통제소의 하천예보연감에 따르면 1918년 한강 인도교에서 강물 높이를 측정한 이래 수위가 10.5m가 넘은 해는 6차례 있었다. 1925년 11.76m, 1990년 11.28m, 1972년 11.24m, 1984년 11.02m 등이다. 한강의 홍수 경보는 한강대교 수위 8.5m(주의), 10.5m(경계), 13.3m(심각)에 발령된다. 이번 장맛비에 팔당댐에서 초당 1만t이 넘는 물이 방류되면서 한강대교 수위는 15일 오후 9시40분 5.94m를 기록했다. 그러니 수위 10m가 넘어 홍수 경계경보가 발령된 한강의 위력은 상상조차 어렵다.

한강의 가장 심각한 물난리는 1925년(을축년) 대홍수다. 그해 7월 18일 한강대교 수위 11.76m(해발 14.23m)는 아직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대만 인근에서 생성된 태풍이 11~12일 한반도를 지나면서 중부지방에 홍수가 났다. 그런데 물이 빠지기도 전에 두 번째 태풍이 들이닥쳤다. 태풍이 18일 강화도를 지나 황해도 옹진군에 상륙하면서 서울에 65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얼마나 비가 많이 왔는지 송파 일대를 휘감아 돌던 한강 물줄기가 곧게 펴져 석촌호수가 생겼고, 강북에서 걸어서 건너던 섬이었던 잠실이 강남쪽으로 붙어버렸다. 용산 일대가 잠겨 숭례문 앞에까지 물이 차올랐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에 늦장마로 인한 3차 홍수, 가을 태풍이 불러온 4차 홍수까지, 지긋지긋한 물난리는 끝이 없었다. 피해가 제대로 신고되지 않을 때였는데도 사망자가 무려 647명, 무너진 집이 1만7000여호로 집계됐다.

지금 서울의 홍수 방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강 수계에만 댐이 10개가 넘고 홍수를 조절하는 다목적댐은 4개나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1980년대 1조원 가까이 투입된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강물이 넘칠 걱정은 사라졌다. 서울 사람들은 이제 을축년 같은 대홍수를 걱정하기는커녕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한다. 그런데 아직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물난리가 나고 애꿎은 사람이 다치니 안타까운 일이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게 인간인데, 겸손하지 못한 탓일까.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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