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말 많은 신의료기술 평가, 답은 현장에 있다


신의료기술 평가 제도를 두고 말들이 많다. 의료인 혹은 업체가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의료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까다로운 유효성·안전성 검증을 통과해 시판 허가까지 얻었는데, 그 이후 시장 진입까지의 과정이 첩첩산중이라 최종적으로 환자 치료에 쓰이지 못하거나 의료 현장 적용에 제한을 받는다는 지적이다. 그 핵심에 ‘중복 규제’ 비판을 받는 신의료기술 평가가 있다.

근래 디지털치료제나 인공지능(AI) 진단, 로봇 수술, 3D 프린팅, 유전자·줄기세포 치료 등 첨단 의료기기·혁신기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더 자주 회자되고 있다.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해 얼마 전 식약처 승인을 받은 의사 출신 업체 대표는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는데, 수능을 또 보라는 격”이라고 했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2007년 도입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주관한다. 문제는 식약처 의료기기 허가와 별반 차이 없는 신의료기술 평가를 또다시 통과해야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과하지 못하면 현 법령상 건강보험 급여 혹은 비급여로라도 병원에서 처방할 수 없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의료기기를 활용한 수술·시술 행위까지 같이 살펴본다는 점과 신청인의 제출 자료가 아닌 체계적 문헌 고찰을 통해 전 세계에 출판된 모든 임상 연구논문을 의료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비교·검토하는 점이 식약처 허가 절차와 다르다. 하지만 식약처 허가도 의료기기의 사용 목적과 방법, 사용상 주의사항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때문에 해당 기기를 사용한 수술·시술 행위 역시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즉 새로운 의료기기가 식약처 승인을 받았다면 그것을 활용한 의료술도 안전성·유효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으므로 바로 의료 현장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발자들 입장이다. 그런데 신의료기술 평가가 또 하나의 족쇄가 돼 첨단 의료술의 빠른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당초 취지인 국민 건강과 의료산업 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기 일쑤라는 것이다.

신의료기술 평가에 활용되는 체계적 문헌 고찰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사항을 요구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찰 문헌이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으로 수행된 연구논문이어야 하고 RCT 논문이 없으면 근거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의료기기가 환자 수술·시술에 사용되는 것이므로 의약품 임상시험의 ‘가짜약’처럼 가짜 제품을 활용한 비교 임상 같은 건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에 충분한 임상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이제 갓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에게 그동안의 연구 실적을 가져오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중적이고 강도 높은 규제로 인해 신의료기술 평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해외로 눈을 돌려, 실제 현지에선 허가받아 널리 쓰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국에선 시장 진입 전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을 것인지 여부가 선택 사항이다. 한국도 신의료기술 평가가 시장 진입 자체를 막는 수단으로 활용돼선 안 되고, 건강보험 등재 여부 판단에 대한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호된 시어머니’가 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식약처 허가를 받을 경우 일단 시장에 진입해 쓸 수 있도록 하고, 비급여로 사용하면서 안전성·유효성 데이터를 충분히 쌓게 되면 그 시점에 신의료기술 평가를 진행해 해당 의료기술에 대한 건보 적용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국민 건강 보호와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신의료기술 평가는 없어서는 안 될 제도다. 다만 규제 개선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열 필요가 있다. 정답은 늘 현장에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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