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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직부패 표상 ‘전별금·떡값’, 선관위엔 버젓이 존재했다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 앞 조형물 모습. 뉴시스

근무처를 옮기는 이에게 주위에서 인사치레로 주던 ‘전별금’, 설이나 추석에 관행적으로 주고받던 ‘명절 떡값’, 해외 출장 등 먼 길을 떠나는 이에게 경비에 보태라며 건네던 ‘장도금’. 공직사회에서 일상적 부패상으로 지목돼 오래전 사라졌거나 금기시돼온 이런 돈이 선거관리위원회에는 버젓이 살아 있었다. 감사원이 10일 공개한 선관위 기관감사(지난해 9~11월 실시) 결과는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 전의 한국 사회로 돌아간 듯한 인상을 줬다. 무려 128명의 시·군·구 선관위 직원들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적발됐는데, 89명이 전별금(10만~50만원)을, 29명이 명절 떡값(10만~90만원)을, 20명이 해외여행 및 골프여행 경비(총 1136만원)를 받았다고 한다. 이들에게 돈을 건넨 사람은 민간인 신분인 각 지역 비상임 명예직 선관위원들이었다. 정당 출신이거나 정치에 뜻을 둔 이들이 많아 ‘보험용’ 금품이 될 소지가 다분한 돈을 선관위 직원들이 저렇게 구태의연한 명목으로 받아왔다.

더욱 황당한 것은 중앙선관위 사무처가 직원들에게 이런 돈을 받아도 된다고 안내했다는 점이다. “지방 선관위원은 선관위 직원의 ‘상사’이므로 격려금 차원에서 지급하는 정당한 돈”이란 논리로 청탁금지법 질의응답 문안을 작성해 내부 게시판에까지 올려두고 있었다. 감사원은 “민간인이 선관위 직원의 상급자일 수 없다”며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선관위가 청탁금지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전별금·떡값·장도금 같은 구시대적 내부 관행을 합리화한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오랜 세월 외부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관위 조직을 성역화해서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만 좇다보니 무엇이 부패이고, 무엇이 아닌지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작 일해야 할 선거 때 휴직 행렬이 줄을 잇는 조직, 그래서 부족해지는 인력을 ‘아빠 찬스’ 부정 채용으로 채워온 조직이 이제 법에 금지된 부정한 돈을 정당한 돈으로 둔갑시킨 사실까지 드러났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기관을 이따위로 운영하게 놔둘 수 없다. 전면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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