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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의원님들의 철야 농성

남도영 논설위원


‘농성’은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닫고 성을 지킨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시위 용어로 사용된다. 군사정권 시절 많은 노동자와 학생이 최후의 투쟁으로 농성을 선택했다.

1979년 가발수출업체 YH무역의 여성 노동자 187명이 회사의 위장폐업조치에 항의해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 시위를 벌였다.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농성 이틀 만에 경찰은 폭력 진압에 나섰고, 진압 과정에서 22살 노조 상무집행위원 김경숙씨가 사망했다. YH 사건은 이후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 부마항쟁 등으로 이어져 유신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높은 건물이나 굴뚝 위에 올라가서 농성하면 ‘고공 농성’이다. 1931년 평양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은 12m 높이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언론은 그녀를 ‘을밀대 체공녀(滯空女)’라 불렀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1990년 파업 진압에 나선 경찰에 맞서 높이 82m의 대형 크레인인 골리앗에 올라 농성을 했다.

밤을 새워 농성하면 ‘철야 농성’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6일 오후 7시부터 1박 2일간 국회 로텐더홀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를 위한 철야 농성을 했다. 원래 167명 의원 전원이 참여하려 했는데, 의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자 철야 농성은 흐지부지됐다. 농성은 약자들의 투쟁이다. 배수진을 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처절한 투쟁이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은 상임위에 장관을 불러 따질 수도 있고, 법안도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폭력진압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자신들의 임금은 자신들이 올린다. 약자가 아닌 강자라는 얘기다. 강자가 약자의 투쟁방식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하니 울림이 없다. 국민도 무관심하다. ‘형해화(形骸化)’란 내용은 사라지고 뼈대만 남은 상태를 말한다. 민주당의 철야농성과 단식투쟁이 그런 상태다. 지난 5월 길거리에서 벌어진 민주노총의 1박 2일 노숙투쟁도 마찬가지였다.

남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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