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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전현희 물값’ 240만원 대납 의혹 전말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권익위원장 의혹 감사 결과 ‘처신에 문제 있다’가 6건
‘전혀 사실무근’이 7건 나와 6건 놓고선 양측이 다툼 중

당장 물러날 만한 ‘제보’로 감사했지만 기대 밑도는 결과
허위·정략적 제보에 기관 역량 허비하지 않도록 경각심 가져야

감사원의 국민권익위원회 감사 결과가 얼마 전 나왔다. 10개월이나 걸린 데다 현장감사 기간도 연장되는 등 고강도 감사였다. 감사원은 제보가 접수돼 감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었다. 제보는 모두 13건이다. 감사원 사무처에 따르면 이번에 6건은 일부 문제가 있는 것으로, 7건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났다. 하지만 6건도 문제 삼을 게 아니어서 불문(不問)에 부치기로 했는데, 사무처가 일방적으로 공표했다고 전현희 권익위원장이 반발하고 있다.

6건에는 전 위원장이 직원 갑질 혐의로 징계받은 권익위 국장을 위해 탄원서를 쓴 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 관련 권익위 유권해석에 위원장이 개입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전 위원장의 상습지각 의혹도 지적됐다. 그 외 3건은 비교적 경미한 사안이다. 하지만 전 위원장은 “최고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사무처가 권익위원장에게 제기한 모든 쟁점에 대해 무혐의로 판단했고, 탄원서 문제만 기관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이들 사안은 현재 양측이 수사 의뢰나 고발을 한 상태여서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는 추후 수사로 밝혀질 테다.

그런데 이번 감사의 전후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문제 있다는 6건 못지않게 나머지 7건의 결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회에서 ‘정치감사’라고 비판한 야당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게 있다”고 자신 있게 맞받아친 것도 이들 7건 때문이었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7건에는 전 위원장이 개인 수도요금을 세금으로 대납하도록 했다는 의혹과 역시 나랏돈으로 구입한 고가의 한복을 빼돌려 사적으로 사용한 의혹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묵과는커녕 당장 물러날 만한 사안이었다.

수도요금 대납 의혹은 이런 내용이었다. 현행 규정상 기관장에게 관사를 제공하고 그 시설을 쓸 수 있도록 유지하는 역할은 정부 몫이다. 대신 수도·전기요금은 실제 관사를 쓴 사람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2021년 1월에 권익위원장의 세종시 관사 수도요금이 무려 240만원이나 나왔다.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전 위원장이 동파를 핑계로 권익위에 요금을 대납하도록 지시했다’는 게 제보의 요지였다. 실제로 요금은 권익위가 냈고, 감사원까지 감사에 나서자 ‘뭔 물을 그리도 헤프게 썼느냐’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서울로 간 게 아니냐’ 등등의 온갖 억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감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①요금이 왕창 나온 때에 전 위원장이 관사에 머물지 않았고 ②비슷한 때에 관사가 있는 건물의 다른 세대에서도 동파가 발생했으며 ③관사 직원을 대동해 점검한 결과 실제로 세탁실 수도가 동파돼 냉수관과 온수관 모두에서 누수가 발생한 게 확인됐다. 감사원은 결국 이 제보가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복 관련 제보는 전 위원장이 2020년 12월에 국제반부패회의 때 필요하다는 이유로 유명 디자이너의 한복을 권익위 예산으로 사서 입은 뒤 추후 이를 빼돌려 개인 용도로 썼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①디자이너 한복을 사지 않았고, 오히려 과거 반부패회의 때 의상을 빌려준 회사를 수소문해 한복을 무상으로 빌렸으며 ②행사 직후 한복을 업체에 돌려줬고 ③반환한 내역의 기록이 우체국 등기로 남아 있다는 게 감사 결과였다. 이 역시 허위 제보로 판명됐다.

이외에도 전 위원장이 지인한테 금품을 수수한 의혹, 유명 인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 처리를 고의로 지연시킨 의혹, 변호사 출신인 전 위원장이 법률사무소를 차명으로 운영 중이라는 의혹 등 나머지 제보들도 다 가짜 제보로 밝혀졌다. 7건 감사 결과는 허무함 그 자체였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전 위원장이 물러났어야 했느냐, 아니냐는 문제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엉뚱한 제보들 때문에 권익위 직원들이 장기간 감사에 시달리고, 감사원도 헛심을 쓴 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사무처 주장대로 탄원서나 지각 문제 등에 일부 성과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지난 10개월간의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은 나온 결과에 비하면 치른 대가가 커도 너무 커 보인다. 이번 결과로 감사원이 그간 쌓아온 공직사회 암행어사로서의 명성이나 독립적 위상이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현 정권이 벌인 고래 싸움에 감사원 새우등만 터진 꼴이다. 국가기관들이 허위 제보, 정략적 제보에 휘둘려 역량을 허비하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될 터이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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