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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한국교회 안의 작은 빈틈

장창일 종교부 차장


제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으로도 불린다. 프랑스로 밀고 들어오는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 국경 일대에 판 참호는 북해부터 스위스까지 길게 이어졌다. 이를 우회해 프랑스 깊숙한 곳으로 병력을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참호와 참호 사이의 ‘무인지대’를 뒤덮은 철조망에는 수많은 시체가 걸렸고 참호 밖으로 나오는 군인들은 상대가 쏜 기관총탄을 피할 수 없었다. 참호 안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환경이었다. 무인지대를 오가며 몸집을 키운 쥐 떼는 참호 속 오수를 놀이터 삼아 떼 지어 다녔다.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끝났다. 독일에는 전쟁의 책임을 물어 상상하기 힘든 전쟁 배상금을 물렸다. 회생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인 독일인들의 분노는 스멀스멀 커졌다. 아돌프 히틀러라는 괴물이 등장해 독일을 부추겼다.

프랑스도 다시 다가올 전쟁 준비에 나섰다.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콘크리트 요새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스위스부터 룩셈부르크를 잇는 750㎞ 길이의 국경에 방벽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마지노선’은 이렇게 탄생했다. 1930년 시작한 공사는 1936년 마무리됐다. 규모는 대단했다. 142개의 요새와 352개의 포대가 설치됐고 모든 시설은 지하로 연결됐다.

완공 3년 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시작됐다. 철통방어를 마친 프랑스 육군은 전체 92개 사단 중 50개를 마지노선 전역에 배치하고 독일군의 침공을 기다렸다. 견고한 요새와 체계적으로 배치된 대포는 독일을 막아내기에 충분했고 더러 요새를 넘더라도 엄청난 병력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프랑스의 빈틈을 노리면서 변수가 생겼다. 프랑스 북동부, 벨기에와의 국경에 있던 아르덴 숲을 침투로로 택한 것이었다. 숲은 1만㎢ 넓이로 해발고도가 350~500m, 가장 높은 곳은 694m에 달할 정도로 험했다. 천연 요새로 손색이 없었다. 수많은 나무가 빼곡하게 있어 대규모의 탱크 부대가 이곳을 지나 프랑스를 침공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런 환경을 믿고 프랑스는 이곳을 마지노선에서 지웠다.

히틀러의 기갑부대가 나무를 베어 길을 만들면서 탱크를 전진시켜 결국 숲을 돌파했다. 개전 6주 만에 히틀러는 프랑스 수도 파리에 입성했다. 마지노선에 배치됐던 대규모 부대는 고립됐고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독일군에 밀려 덩케르크 해안까지 후퇴했다.

마지노선은 버려지고 말았다. 난공불락의 장벽으로 여겼던 요새는 현재 와인 저장고나 버섯 농장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원래 목적인 요새로 사용된 일은 없었다.

마지노선이 후대에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울타리를 우회하는 빈틈을 제대로 막지 않으면 모든 준비가 무용해진다는 사실이다. 교훈을 통해 한국교회의 현실을 본다. 교세 감소와 신뢰도 하락이라는 악재의 늪에 빠진 한국교회가 믿고 있는 마지노선 그리고 간과하는 빈틈은 뭘까.

엄숙한 교회, 그 안에만 모여 있는 신앙 공동체가 자칫 마지노선처럼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교회 안에만 있으면 모든 위기를 극복한 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우리만의 리그’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교회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곳은 교회 밖, 세상 속이다. 어두운 세상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는 교회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소외된 이웃, 상처받은 영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마지노선이 외면했던 아르덴 숲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 안에 심은 복음이 결국 한국교회의 희망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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