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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민방위 훈련

고승욱 논설위원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패망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자유 베트남을 지킨다며 32만명 넘게 파병했는데 끝내 실패한데다, 도미노처럼 한반도 공산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컸다.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에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잇따라 발견된 때이기도 했다. 고조된 불안감 속에 박정희 대통령은 ‘내 마을과 내 직장은 내가 지킨다’는 구호를 내걸고 민방위대를 만들었다.

1·2차 세계대전은 직업 군인의 영역에 머물던 전쟁을 국민 전체로 확장시켰다. 비행기의 폭탄 투하는 전후방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는 민방위(civil defense)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독일의 급강하폭격기가 수시로 날아왔던 영국 런던에서는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민방위 대원들이 대피소를 안내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후 전쟁과 자연재해에 따른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주민들의 자발적 조직이 세계 각국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발이 달랐다. 유신을 선포한 박 대통령에게 민간 주도의 자발적 조직은 의미가 없었다. 여당인 공화당은 그해 7월 9일 야당 반대를 뚫고 새벽에 국회를 열어 민방위기본법을 통과시켰다. 9월 22일에는 전국적으로 390여만명이 참여한 민방위대 창설식이 열렸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놀라운 성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20∼40세 남자를 의무적으로 편입시킨 법 때문이었다. 민방위 대원은 매년 일정 시간의 교육 훈련을 받아야 한다. 전 국민이 사이렌에 맞춰 대피하는 공습 훈련도 매월 15일 실시됐다.

이후 민방위는 군부독재의 잔재로 취급됐다. 교육 훈련은 정권 홍보에 치우쳐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자연재해 대비 훈련으로 바뀌었지만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북한의 미사일·무인기 도발로 공습 훈련의 필요성이 높아져 6년 만에 민방위 훈련이 어제 재개됐는데도 반응이 시큰둥한 건 이 때문이다. 민방위복 디자인을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민간인 통제를 위해 설계된 관 주도의 시스템을 다시 만드는 게 우선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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