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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가피한 양곡법 거부권… 민주당이 벌인 한바탕 ‘정치쇼’

4일 경기도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보관 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불가피한 일이었다. 농민과 농업을 위해서도, 국가재정과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애초에 통과되지 말았어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안을 밀어붙이며 ‘남는 쌀 방지법’이라 주장한 논리는 궤변에 가깝다.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를 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부를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했다. 지금도 해마다 5% 이상 남아도니 ‘3~5%’란 기준은 정부가 남는 쌀을 무조건 사라는 얘기이고, 그러면 아무리 남아돌아도 다 팔리게 되니 쌀 재배를 더욱 부추길 게 뻔하다. 이 법안을 시행하면 초과 생산량이 최대 16%까지 불어난다는 전망치가 나와 있다. 그렇게 남는 쌀은 창고에서 몇 년 묵히다 헐값에 술 만드는 원료로 공급된다. 개정안은 매년 수조원씩 재정을 쏟아 부어 막걸리를 만들자는 법안이었다.

재정 낭비보다 더 심각한 폐해는 식량안보에 미칠 악영향이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역대 최저인 20%까지 추락했다. 매년 20만t이 남는 쌀을 제외하면 밀(0.8%) 콩(6%) 옥수수(0.7%) 등 필수 식량작물의 자급률이 턱없이 낮다. 곡물 수요의 70~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보다 곡물자급률이 낮았던 일본의 식량안보지수가 지난해 세계 8위로 올라선 반면, 우리는 해마다 추락해 세계 32위로 떨어졌다. 과잉 생산되는 쌀 재배를 다른 필수작물로 돌려 수입을 대체하고 자급률을 높이도록 농업 구조를 시급히 바꿔야 하는데, 개정안은 이를 정면으로 가로막고 있다.

국회 제1당이면서 1년 전까지 여당이던 민주당이 한국 농업의 이런 현실을 몰랐을 리 없다. 농업이 가야 할 미래를 외면한 채 지지기반인 호남 농가에서 나올 당장의 표를 위해 ‘무조건 쌀 수매법’을 밀어붙였다. 믿는 구석은 대통령의 거부권이었을 것이다. 입법 과정에서 거부권 행사는 여러 차례 예고됐고, 그럴 경우 국회에서 재의결 정족수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도 명약관화했다. 어차피 거부권에 막힐 테니(법안의 폐해가 현실이 되진 않을 테니) “우린 쌀 농가 편에서 법을 만들려 했다”는 연출로 표나 얻자는 계산. 이것 말고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설명할 길이 없다. 결국 거부권 행사에 이른 양곡법 사태는 민주당이 벌인 한바탕 ‘정치쇼’였다. 포퓰리즘에 불과한 법안 자체도 문제지만, 입법을 이렇게 정략에 활용하는 행태가 더욱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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