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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美의 무리한 반도체 보조금 지침, 정상회담서 해결해야


미국 상무부가 최근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신청 절차 세부 지침은 독소조항 선물세트를 방불케 한다. 미국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대신 수율(정상품 비율),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생산능력, 핵심 소재, 판매가격 증감 등을 엑셀 파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반도체 업계에 웨이퍼의 수율과 소재는 최고 기밀사항으로 취급된다. 생산품뿐 아니라 직원 급여, 기업 판관비, 마케팅 및 연구개발(R&D) 비용까지 적시토록 했다. 반도체 생산 현황을 넘어 회사 경영 데이터를 모두 내놓으란 얘기다. 한 달 전 상무부가 보조금 신청 기준을 예시로 제시했을 때 주변 우려가 많았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최종 지침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해 미국이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을 제정할 때 한국산 전기차가 혜택에서 배제됐다. 이번 반도체지원법에선 “돈 받고 싶으면 너희가 갖고 있는 기밀 다 내놔”란 식의 갑질을 당하고 있다.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자처하며 미국 내 반도체와 자동차 공장 건설 등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우리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29일 기자들에게 “미국에 투자 보조금 신청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굳이 이런 조건을 들어주면서까지 대미 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기업이 아닌 정부가 나서 “이건 아니다”라고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1일 미국이 발표한 반도체 보조금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조항 변화는 눈여겨 볼 부분이다. 한 달 전 가이드라인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중국 반도체 공장 업그레이드가 금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지만 불리하지 않은 내용으로 완화됐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가 물밑으로 적극 나선 결과로 알려졌다. 이번 보조금 세부 지침 역시 실행 전까지 우리 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부가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대만과 공조해 대응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 달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데 반드시 반도체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의 방일 이후 일본의 역사교과서 개악 등으로 “줄 건 다 주고 뒤통수 맞았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방미 후에도 “우리만 양보했다”는 여론이 일면 곤란하다. 동맹은 주종이 아닌 호혜 관계임을 미국 측에 각인시키고 윈윈의 방식을 도출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의 능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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