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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코로나 3년, 봄의 교향악

우성규 미션탐사부 차장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대구 청라언덕을 찾은 건 지난 2일이다. 옛 대구 읍성의 서쪽 언덕에 교회와 병원과 학교가 있다. 광주 양림동과 전남 순천 선교부지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죽은 아이들을 묻던 곳, 슬픔과 애통의 버려진 공간을 선교사들은 일부러 택해 선교부지로 삼았다. 건물을 짓고 푸르른 담쟁이 넝쿨을 키우며 예배와 진료와 교육에 힘썼다. 죽음의 공간을 생명의 땅으로 소생시키려는 노력이었다.

3년 전 대구를 휩쓴 코로나19로 청라언덕의 블레어 스윗즈 챔니스 선교사 주택은 휴관 중이다. 100년 넘은 건물 안에 각각 선교 의료 교육 박물관으로 쓰이던 곳을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더 멋진 공간이 생겨났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은 사택이 있던 건물을 ‘코로나19,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2020년 2월 18일 대구에서 코로나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사실상 대구 봉쇄로까지 이어지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박물관이다. 코로나 첫 환자 발생 3주년을 맞아 지난달 17일 개관했다.

“여기엔 공황도, 폭동도, 두려워하는 군중도 없다. … 대신 절제된 침착과 고요가 있다.”

박물관 입구엔 당시 대구 현장을 취재하던 미국 ABC방송 이언 패널 기자의 기사 두 번째 단락 리드가 적혀 있다. 패널 기자가 세계로 방영한 화면 속 대구는 말 그대로 텅 빈 거리였다. 확진자 발생 닷새 만에 첫 사망자가 나왔다. 엿새가 되자 감염자가 400명을 넘겼다. 공포와 불안, 우울과 경기 침체의 두려움 속에서 대구의 봄은 사라졌다. 병원과 응급실은 줄줄이 폐쇄되고 도시의 모든 게 멈췄다.

“존경하는 의사 동료 여러분,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바로 저와 의사회로 지원 신청을 해 주십시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합시다.”

대구광역시의사회장의 저 호소문에 뒤이어 의료진이 대구에 모인다. 373명 의사가 무보수로 자원봉사에 나섰고 대한간호협회엔 3874명의 자원봉사 신청이 쏟아진다. 국군간호사관학교를 나온 간호장교 75명은 임관과 동시에 곧바로 국군대구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돌본다.

대구 서문시장 한 건물주는 한 달간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세입자들에게 통보한다. 지게차 운전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구호품 상하차를 돕기 위해 대구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동산병원 간호사는 이단으로 꼽히는 신천지 코로나 감염자들이 모여 있는 중환자실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간호한다. 한복 디자이너는 친환경 마스크를 제작해 나눠준다. 광주의 한 시민은 코로나로 고생한 대구의 소방관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152만원을 기부한다. 경북 성주의 농부는 대구·경북에 보내준 광주시민, 전남도민들의 온정에 감사하며 성주 참외 10상자를 전한다. 시민들은 문 닫은 음식점 유리창에 포스트잇 응원 메시지를 빼곡히 남기며 희망을 꺾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그해 3월 15일부터 28일까지 2주간 방역에 집중한 결과 대구의 일일 확진자 수는 4월 한 자릿수로 떨어지고 5월에는 53일 만에 0명을 기록한다. 춤추는 클럽의 100%, 노래방은 91%,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87%가 자발적으로 문을 닫았다. 시민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코로나 메모리얼 뮤지엄을 나서면 곧바로 동산병원 ‘은혜의 정원’이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하던 시절 태평양을 건너와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온 힘을 다해 복음과 인술을 전한 선교사와 가족들이 묻혀 있다. 코로나 3년, 대구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국교회의 오늘을 생각해본다. 봄의 교향악을 다시 듣고 싶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새 계명을 거듭 다짐해본다.

우성규 미션탐사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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