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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차 가해 조장하는 학폭 대응 시스템, 대수술 필요하다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는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의 아들이 가해자인 학교폭력 사건에서 사람들이 분노한 지점은 두 가지다. ①가해자가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강제 전학이란 징계가 결정됐지만 소송을 끌면서 오히려 무죄 추정의 혜택을 입어 피해자와 같은 학교에 버젓이 다녔고, 점수만 보는 전형으로 서울대에 진학했다. ②피해자는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가해자와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자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떠는 불안 증세를 보이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2차 가해를 불렀고, 피해 회복은커녕 당한 사람만 더 손해 보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사례는 거대한 법률 시장이 형성될 만큼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학교폭력 심의위원회에 연간 2만~3만건이 접수되는데, 징계 무력화를 위한 소송이 늘면서 학교폭력을 전문 분야로 등록한 변호사가 몇 년 새 4배로 불어났고 서울행정법원엔 전담 재판부가 신설됐다. 가해자 측이 심의 단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탓에 어느 피해 학부모는 “요즘은 집단 성폭행 정도는 돼야 강제 전학 처분이 나온다”는 말을 교사에게 들어야 했다. 대입을 앞둔 고교생의 경우 소송을 통한 시간끌기가 이미 공식화해 변호사가 졸업까지 소송을 지연시키면 수천만원 성공 보수가 오간다고 한다. 유전무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가해자가 온갖 법률 기술을 동원하는 동안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속한 재판을 탄원하는 것뿐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2012년 제정됐다. 10년 동안 이렇게 변질된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은 선도와 보호 기능을 상실했다. 아이들에게 편법을 가르치고 불공정을 조장하는 장치로 전락했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피해자 보호와 공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해자와의 실질적 분리 조치부터 실효성 있게 설계하고, 적극적으로 폭력의 책임을 묻는 절차를 통해 회복과 예방이 이뤄지게 해야 할 것이다. 무력한 제도 탓에 사적 복수로 학교폭력을 응징한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드라마에 머물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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