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손 끝으로 그리는 그림… 마음으로 그리는 희망

전맹 시각장애인 박환 화가의 꿈

전맹 시각장애인 박환 화가가 지난 24일 강원도 춘천의 작업실에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 화가는 붓 대신 손끝의 감각으로 캔버스를 조심스레 살피며 색을 칠한다.

봄날 햇볕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햇빛은 보이지 않지만 따뜻한 기운은 느낄 수 있다. 작업 중인 캔버스 곳곳에 옷핀과 가느다란 실, 나무껍질 등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작가는 낯선 길을 찾아가듯 조심스레 손끝 감각으로 느릿느릿 색을 덧칠한다. 전맹 시각장애인 박환(65) 화가의 춘천작업실 풍경이다.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다섯 차례 입선하고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초청받는 등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201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절망에 빠진 작가를 일으켜 세운 건 그림이었다. 시각장애도 그의 예술혼을 없애지 못했다.


박 작가는 연필 대신 실, 구슬핀을 들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나무껍질, 모래 등 각종 재료로 스케치해서 위치, 방향, 두께, 색채 등을 표시한 뒤 물감을 덧입힌다.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음속 세상을 그려낸다.

그의 첫 전시회를 찾은 한 관람객은 “사업으로 재산을 다 잃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는데 박 작가의 작품을 보고 삶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박 작가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의 희망이라도 남기고 싶다”며 그림을 계속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시각장애인 예술가 허은빈 작가가 자신의 작품 '꽃'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텀블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시각장애인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 MZ세대 청년 6명이 이들을 돕기 위해 에이블라인드(ablind)라는 기업을 만들었다. ‘할 수 있다’는 뜻의 에이블(able)에 ‘시각장애인’을 나타내는 블라인드(blind)를 합쳐 만든 이름으로 장애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작품세계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양드림 에이블라인드 대표가 시각장애인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스마트폰용 굿즈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활동은 시각장애 예술인과 함께하는 아트 콜라보레이션, 제품 제작 및 판매,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해 장애 예술가들의 사회적·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이다. 올 2월에는 서울 을지로 SKT타워에서 SKT와 함께 ‘손으로 보는 감각, 손끝으로 전하는 희망’이라는 미디어아트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서울 을지로 SKT타워에서 지난 18일 열린 '손으로 보는 감각, 손끝으로 전하는 희망'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3D로 프린팅된 작품을 만져보고 있다.

양드림 대표는 “편견과 차별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창업했다”며 “특히 시각장애인의 어려움과 고통에 공감한다. 그들이 재미있게 예술 활동을 할 기반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허은빈 작가(왼쪽)와 에이블라인드 직원들이 서울 상도동 사무실에서 작품제작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글=서영희 기자 finalcut0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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