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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강진을 버텨낸 원칙… 튀르키예 에르진市의 교훈

튀르키예 남동부 안타키아에서 12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정도면 ‘기적의 도시’란 수식어가 과하지 않다. 건물 1만2000채가 무너지고 수만명이 사망한 튀르키예 남동부 강진에서 건물 붕괴 0건, 사상자 0명을 기록한 도시가 있다. 인구 4만명의 에르진시(市)는 지진이 덮친 10개 주(州) 가운데 특히 피해가 컸던 하타이주에 있는데도 부상자조차 발생하지 않았다. 시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지진 당시 내가 사는 단층집도 마구 흔들렸지만, 건물이 진동을 버텨준 덕에 몇 분 뒤 아이들과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했다. 비결은 원칙을 지킨 건축 행정에 있었다. 에르진시는 불법 건축을 용납하지 않는 무(無)타협 원칙 아래 예외 없는 단속과 처벌을 밀어붙였고, 지진에 취약한 시설의 철거와 정비를 유도해왔다고 한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금 남동부 지역 건설업자 113명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무더기로 잡아들이고 있다. 내진설계 건물조차 맥없이 무너진 부실 건축 탓에 인명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인데, 사실 이는 국민의 분노를 돌리려는 희생양 찾기에 가깝다. 부실 건축을 방조한 것은 정부였다. 튀르키예 정부는 불법 건축 행위를 처벌하는 대신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주기적으로 사면해주며 그 돈을 재정에 활용해 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2018년 부족한 예산을 메우려 불법 건축 사면을 단행했다. 안전을 돈과 바꾸는 정부로 인해 불법 건축이 당연시되던 분위기에서 에르진 시장은 고지식하게 근절 정책을 폈고, “너만 깨끗하냐”는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원칙을 지켰다. 그 원칙이 규모 7.8의 강진을 버텨내 도시를 구한 것이다.

에르진시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부터 서울 도심 물난리까지 재난이 터질 때마다 안전불감증의 민낯이 수없이 드러났다.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현실을 넘어서려면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줄 원칙이 구석구석 굳건하게 세워져야 한다. 사회도 하나의 구조물이다. 그것을 지탱하는 법과 원칙이란 기둥을 스스로 허문 튀르키예 정부는 국민적 분노를 자초했다. 법과 원칙의 엄중함을 다시 일깨우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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