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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공무원 출신 미술관장은 퇴행이다


대전시립미술관장 자리가 새해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됐다. 대전시는 미술사가·큐레이터 출신 선승혜 전임 관장 임기가 지난 12월 말로 종료됨에 따라 1월 1일자로 새 관장에 시청 내 팀장급 공무원을 승진 발령했다. 관장 인선을 기존의 개방형 임기제 채용이 아닌 시청 내부 일반직 공무원 임용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본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조직 운영의 효율화를 꾀한다는 명분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시립미술관도 같은 방향으로 간다. 수원시립미술관장 자리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출신 김진엽씨가 지난해 11월 11일자로 2년 임기가 종료됐고 현재 공석 상태다. 시청 관계자는 4일 “5급 공무원이 4급으로 승진해 그 자리로 갈 것”이라고 확인했다.

2016년 개관한 수원시립미술관은 관장 없는 예술감독 체제로 출발했다. 시는 논란이 일자 미술관추진단장을 맡았던 5급 행정직 공무원을 초대 관장으로 발령냈다. 그러다 2018년 개방형 임기제 관장 임용 방식으로 전환해 미술계 전문가를 외부 공모했고 김찬동, 김진엽씨가 차례로 2년 임기제 관장직을 수행했다. 시는 이번 시립미술관장직의 공무원 임용은 원위치로 돌아간 것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대전·수원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이는 이런 미술관 행정은 각 분야에서 전문화로 가는 21세기의 시대적 흐름에 비춰보면 후퇴다. 그야말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술계는 이 같은 퇴행적 움직임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전과 수원은 문화행정을 선도해야 하는 5대 광역시, 4대 특례시라는 점에서 낭패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대전시도 그렇고, 수원시도 그렇고 “그까짓 미술관장, 공무원이 맡아 한들 뭐가 다를 게 있느냐”라고 말할 것이다. 단언컨대, 다르다. 미술이야말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미술관은 작품 수집과 전시 행위, 교육과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어떤 작가의 전시를 열 것인가. 그건 관장의 몫이다. 큐레이터가 하게 하고 관장은 관리만 한다고?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리더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알아야 하고, 행동해야 하고, 시킬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미술사·미술이론·미술현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쳇말로 ‘미알못’ 비전문가가 어떻게 소장품 정책에 대해, 전시 방향에 대해 ‘행동하고 시키고 가르치고 평가하는’ 전문적인 직무 수행이 가능할까. 만약 행동한다면 인사권자인 시장의 지시에 대한 일사불란한 이행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미술관은 일사천리의 속도감이 요구되는 행정 현장이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 비전을 갖고 미술의 현재 위치와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성찰적 태도가 덕목인 분야다. 그래서 미술에 정치가 끼어드는 이상한 행정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한국 미술은 국제적으로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올해 한국의 1960∼70년대 실험미술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열려는 것이 그런 예다. 지역의 한 미술관 관장 A씨는 “한국미술이 세계적으로 파워풀할 때 파도를 타야 한다. 파도를 타려면 진짜 전문가들이 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지역 미술인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 일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도 미술행정에서 일사불란을 중시했던 시기가 있었다. 개발독재시대다. 1969년 설립된 국립현대미술관은 초기 공무원 관장 체제로 유지됐다. 그러다 1981년 홍익대 교수였던 미술평론가 이경성씨가 전문가 출신 첫 관장으로 임명된 이후 전문가 체제를 지속해 왔다. 이런 도도한 흐름을 역행하는 두 지자체의 행보가 답답하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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