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나이 63세’… “발레가 반드시 ‘젊음의 예술’만은 아냐”

‘스페셜 발레-존재의 이유’ 공연
창작 발레 각각 1편씩 선보인 후
‘인생은 아름다워’에 함께 출연

무용수, 안무가 그리고 지도자로서 평생 최선을 다해 온 원로 현역 발레 무용가들의 무대인 ‘스페셜 발레-존재의 이유’가 20~21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무대에 참여하는 제임스 전(왼쪽부터), 김순정, 조윤라, 백연옥, 문영철 등 5명이 최근 한양대 무용과 연습실에서 리허설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발레는 흔히 ‘젊음의 예술’이라고 한다. 무용수가 구사하는 테크닉이 근력과 탄력 등 신체적 나이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어떤 예술 분야보다 활동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발레단의 정년이 대체로 40~45세인 것도 무용수가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적 한계로 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것도 매일매일 반복적인 훈련을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비록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60세를 넘긴 나이에도 꾸준히 무대에 서는 발레 무용수들이 있다. 오는 20~21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스페셜 발레-존재의 이유’는 조윤라(67), 제임스 전(63), 김순정(62), 문영철(61), 백연옥(61) 등 5명의 원로 발레 무용가들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발레계의 관심이 높다.

평균 나이 63세인 이들은 후학을 육성하는 한편 그동안 ‘춤작가전’ 등의 무대에서 직접 안무하고 출연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스페셜 발레-존재의 이유’에서 원로 무용가 5명은 예술가로서 걸어온 춤 인생을 돌아보는 창작 발레를 각각 1편씩 선보인 후 제임스 전 안무의 ‘인생은 아름다워’에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평생 발레계에서 활동했지만 이들 5명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0월부터 각각 개인 연습을 시작하는 한편 11월부터 일요일마다 한양대 무용과 연습실에서 만나 함께 리허설을 진행하는 5명을 최근 만났다.

창작 활동이 춤출 수 있었던 원동력

최연장자인 조윤라 충남대 명예교수는 1980년 창단된 한국 최초의 대학동문 발레단 ‘발레블랑’의 살아있는 역사로 유명하다. 이화여대 무용과 홍정희 교수의 제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발레블랑은 창단 이후 매년 정기공연을 여는 한편 자매단체인 발레연구학회를 만들어 학술 활동도 펼쳐 왔다. 발레블랑은 1984년 국내 최초의 본격적 민간 직업발레단인 유니버설 발레단과 199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개원 이전 한국 발레의 발전에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했다.

“그동안 원로 무용가의 무대라고 하면 한국무용에 집중됐었죠. 아무래도 한국무용은 나이를 들수록 춤이 깊어진다는 말도 있어서 70~80대에도 무대에 서는 분들이 꽤 있으니까요. 이에 비해 발레는 40대에는 무대를 떠난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이번에 꾸준히 발레를 춰온 분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저는 공연과 상관없이 평소 하루에 2시간 몸을 풀고 3시간 연습을 하는 루틴을 지키고 있어요.”(조윤라)

제임스 전 한국체대 교수는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을 거쳐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다가 1995년 아내 김인희와 함께 서울발레시어터(SBT)를 창단했다. 부부가 각각 예술감독과 단장을 맡아 SBT를 20년간 이끌어온 뒤 지난 2016년 후배들에게 물려줬다. 제임스 전 교수의 경우 한국에서 손꼽히는 발레 안무가 중 한 명으로 1995년 록음악을 가지고 만든 ‘현존(Being)’을 시작으로 100편 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다만 이번 공연에선 한국무용가 강미선이 안무한 작품에 아내와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우리 5명은 젊은 시절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작품 창작도 겸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해외 발레계에선 70대의 나이에도 무용수로서 무대에 서는 사례가 있지만, 발레 장르에서 나이든 무용수를 캐스팅하는 경우는 드물죠. 그래서 이런 무대가 너무나 소중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제 파트너로 함께 춤추는 아내는 원로 기준인 60세에 1살 부족한데, 다음에 다시 열릴 때는 원로무용가로서 참여하고 싶어해요.”(제임스 전)

나이라는 편견을 깨고 무대에 서오다

김순정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장은 1980년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청주대와 동덕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1999~2002년 러시아로 발레 교수법 유학을 다녀왔다. 김 학장은 자신의 작품 외에도 올해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의 안중근 모친 조마리아 여사로 출연하는 등 이번 공연 참가자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무대에 서고 있다.

“제가 뒤늦게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했을 때가 40대 중반이었어요. 귀국 후 제가 토슈즈를 신고 남자 무용수와 파드되(2인무)를 추니까 학부모들이 쇼크를 받더라고요. 지금이야 발레계에서 나이 먹고도 춤추는 무용수들이 있지만, 예전엔 40살도 안 돼서 무대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특히 교수는 무대에 직접 오르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서 ‘아직도 춤추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었죠. 그래서 조윤라 선생님 등 이번 공연 참가자들이 오래전부터 편견을 뚫고 계속 무대에 선 것은 대단하다고 봅니다.”(김순정)

문영철 한양대 교수는 일본 도쿄시티발레단과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친 후 2003년 교수로 임용되면서 ‘문영철 발레 뽀에마’를 창단했다. 한양대 출신으로 이뤄진 발레 뽀에마는 문 교수가 안무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는데, 현재 대학동문 발레단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 끼치길”

“이번 공연은 근래 도입된 원로 예술가 지원 제도 덕분에 기획됐는데요. 저희보다 앞서 한국 발레의 토대를 놓은 선배님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게 떠올라서 안타깝더라고요. 발레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신 선배님들에 비하면 우리는 혜택받은 세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요즘 후배들이 예전보다 빨리 발레를 그만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원로 무용가 무대가 후배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거로 생각합니다.”(문영철)

백연옥 한국발레협회 이사는 러시아 바가노바발레 아카데미 한국 분교 예술감독과 유니버설발레단 세컨드컴퍼니 예술감독을 거쳐 선화예고와 계원예중 무용부장을 역임했다. 오랫동안 청소년 발레 교육에 헌신해온 백 이사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이번에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예술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아무래도 창작 활동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올 초 학교에서 은퇴한 후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재독 안무가 허용순이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지도위원으로 워밍업한 뒤 이번에 오랜만에 무대에 서게 됐네요. 8년의 공백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지만 이번 공연이 제게 새로운 활력과 목표의식을 줬어요. 올해는 예전의 몸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 만큼 포인트 슈즈는 신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이런 무대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꼭 포인트 슈즈 신은 모습을 보여드릴게요.”(백연옥)

원로 발레 무용가 5명은 발레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이번 무대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번 무대가 정말 설레고 행복하다. 나이가 들어도 발레를 계속하는 우리가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면서 “물론 우리의 춤은 젊은 무용수들처럼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대신 내면의 심리를 느끼게 해주는 춤이다. 발레가 반드시 ‘젊음의 예술’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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