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을 바꾸지 못하면, ‘탄소 제로’는 없다

[책과 길]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전현우 지음
민음사, 300쪽, 1만7000원

독일 한 도시의 중앙역 근처 ‘만남 구역’ 표지판. 만남 구역에서는 일반적인 속도 제한 이외에 규정, 교통 표지판, 신호등이 거의 없다. 차를 탄 사람보다는 걷는 사람이 많은 골목길의 리듬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교통·철도 연구자 전현우는 기후위기 속에서 도시 생활을 유지하려면 차보다 보행을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전현우 제공

“탄소 배출량을 줄여라.”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명령이다.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막지 않으면 ‘기후파국’이 오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세계가 동의하고 있다.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의 책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는 교통 부문 탄소 배출량이 거의 줄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2005년 대비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 비율을 보면 에너지 전환, 산업, 건물 등의 부문에서는 감축이 확인되지만 교통 부문만은 거의 변화가 없다. 비OECD 국가에서는 이 기간 모든 부문의 탄소 배출량이 증가한 가운데 교통 배출량의 증가율이 가장 크다.

저자는 이 데이터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에서 교통 부문이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교통 배출량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대 초반부터 교통이 OECD 최대 배출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며, 유럽의 경우 2019년부터 교통 분야의 배출량이 전력 분야보다 많아졌다.”


교통을 바꾸지 못한다면 탄소 제로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배출량 저감을 최우선으로 삼을 경우, 현재의 교통과 이동 시스템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후위기는 이동의 위기이기도 하다.

교통·철도 연구자로 유명한 전현우는 첫 책 ‘거대도시 서울 철도’(2020년)에서 철도망이 기후 대응의 주축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번 책에서는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자동차를 지목하면서 ‘자동차 지배’와 ‘자동차에 납치된 도시’를 비판한다.

한국에서 인구는 줄고 있지만 자동차는 매년 50만대 이상 늘어나는 중이다. 고속도로와 신도시가 자동차 지배를 강화했다. 저자는 “자동차보다 길과 도시에 큰 변화를 가져온 수단은 없다”며 “자동차에 납치된 도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문제는 승용차가 한 사람당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고, 오염물질도 많은 이동 수단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2022년의 한국에서 자동차 없이 사는 건 어렵다. 인간의 이동에 대한 욕망은 또 어떻게 할까.

흔히 전기차가 자동차의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저자는 이 대안을 그리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전기차에 충전할 전기를 새로 만들려면 제주도의 0.5∼1.5배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필요하다.

자동차 주행거리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저자는 ‘확장된 걷기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를 재편하는 해법을 제안한다. 확장된 걷기 공간이란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를 걸어서 움직일 수 있고, 이 걷기를 돕는 수단으로 공공교통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차가 없는 뚜벅이도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확장된 걷기 공간을 구현하는 주요 수단은 ‘15분 도시’와 철도망이다. 15분 도시는 걷기나 자전거 등을 통해 15분 내로 일상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일종의 압축 도시로 기차역이 중심이 된다. 하나의 광역권을 이루고 있는 수십 수백 개의 15분 도시를 연결하는 건 철도다. 철도는 기후위기 시대에 주목해야 할 교통 수단이다. 철도를 활용하면 같은 거리를 갈 때 탄소 배출량은 승용차에 비해 5분의 1 이하이고, 에너지 소비량은 10분의 1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은 정교한 게 아니다. 자동차에 납치된 도시를 구하는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소개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철도, 15분 도시, 보행 등이 그것이다. 길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너무 크고 어려운 문제라서 개인들로선 체념하거나 외면하기 쉽다. 저자는 이런 막막한 마음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자동차 문제에서부터, 이동의 문제에서부터 기후위기 시대의 길찾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의 말대로 자동차 지배는 한국에서 수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바꾸는 게 왜 불가능할 것인가.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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