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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어른들의 비겁함이 이태원 참사 생존자 위기 부추긴다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인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다가 홀로 살아남았던 고등학생이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의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경찰에 발견된 A군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였다. A군은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다가 누군가 얼굴에 물을 뿌려줘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있던 친구 2명은 세상을 떠났다. A군은 그동안 교내 심리상담과 함께 매주 두 차례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고 조금씩 일상으로 복귀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학교 선후배들은 그가 친구들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려고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리면서 밝게 살려고 노력해왔다면서 뜻밖에 전해진 그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특히 어른들은 A군의 사망을 ‘뜻밖’이라고 간단히 넘어갈 자격이 있는가. 정치권은 이태원 참사를 볼모 삼아 행정안전부 장관 사임과 국정조사 진행 여부를 둘러싼 정쟁에 매달리느라 참사 이후 한 달 보름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참사 현장에 직접 노출된 이들은 3개월가량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다는데 우리는 그 정도의 인내심과 관용조차 베풀지 않은 셈이다.

하물며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창원시 의원은 페이스북에 참사 희생자를 두고 “#나라구하다_죽었냐” 등 막말을 쏟아냈다. 지난달 말에는 방송 인터뷰에 나오는 유족들을 향해 “자식 팔아 한몫 챙기자는 수작”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려 없는 막말이 양산돼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면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치료행위를 사치로 느껴 더 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A군의 친지는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참사 당시엔 살았지만, 이후 지켜주지 못했다는 가족의 자책감이 가장 큰 상황”이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가 생존자와 그 가족에 대한 3차 가해로 이어져 비극이 확산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누구 하나 진심으로 책임지려는 어른이 없는 우리 사회의 비겁함이 참사에서 살아온 또 다른 A군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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