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애타는 기다림… 과학이 응답할까

[커버스토리] 이종 간 장기이식 R&D 현주소


‘돼지 장기를 사람한테 이식한다?’

얼핏 들으면 공상과학책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다. 하지만 이 믿기 어려운 기술이 임상 시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서로 다른 종(이종) 간 장기 이식 기술 개발에 앞서 있는 미국에선 임상 시험이 한창 추진되고 있다.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기만 속절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에게는 실낱같던 희망이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보다 늦기는 했지만 한국도 이종 간 장기 이식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재 돼지 각막과 심장, 신장과 같은 장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기술 개발 최전선에 있는 곳이 농업 기술을 연구하는 농촌진흥청이라는 점이다.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이 확보한 돼지 복제 기술은 이제 이종 간 장기 이식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성과가 됐다.

이종 간 장기 이식, 어디까지 왔나

국립축산과학원의 이종 간 장기 이식 연구는 역사가 꽤 깊다. 돼지 복제를 위한 기술 개발이 2006년 시작됐고 3년 만에 국내 최초 이종 이식용 돼지 ‘지노’가 탄생했다.

이후 지노를 개량한 ‘믿음이’가 탄생했다. 2012년부터는 원숭이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장기 이식용 동물로 돼지를 택한 이유는 돼지가 사람과 생물·해부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돼지를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체내 거부 반응이 비교적 적다는 얘기다. 그렇다고는 해도 돼지 고유의 유전자를 그대로 갖고 있는 돼지로는 이식이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가 해소된 이종 이식용 돼지를 만들려면 최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써야 한다.

우선 돼지를 복제하는 단계에서 사람에게는 없지만 돼지에만 있는 항원을 제거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람에게는 있지만 돼지에는 없는 유전자를 이식용 돼지에 넣는 작업도 병행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겉모습은 돼지지만 실제로는 돼지와 전혀 다른 의료용 돼지가 탄생하게 됐다.

게티이미지

개발 초기에만 해도 이종 이식용 돼지의 장기를 이식한 원숭이의 생존율은 낮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국립축산과학원이 내놓은 결과물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16일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각막을 이식한 원숭이 8마리 중 5마리가 6개월 이상 정상 시력을 유지했다. 5마리 중 3마리의 경우 1년 이상 시력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국립축산과학원과 건국대병원은 ‘이 정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진행해도 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신장을 이식한 원숭이 생존율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12~25일이 한계였지만 최근에는 100일을 넘겼다. 결국 115일이라는 최장 생존 기록까지 확보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로 평가됐다. 미국의 경우 생존 기간이 100일을 넘어선 이후 단기간에 생존 기간이 급격히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윤익진 건국대병원 교수는 “앞으로 이종 간 이식 생존 기록을 크게 향상할 수 있는 분수령 격인 성적표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심장의 경우 아직 최대 생존 기간이 60일로 각막·신장의 생존 기간에 못 미치기는 했지만 실험 초기(10~20일)보다는 3배 이상 생존 기간이 늘었다.

이종 이식용 돼지 개발 기술이 진화하게 되면 피시험체인 원숭이 생존 기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립축산과학원은 돼지 항원 1개를 제거하고 사람 유전자 2개를 접목한 이종 이식용 돼지까지 개발을 완료했다. 2024년에는 돼지 항원 3개가 제거되고 사람 유전자 6개가 접목된 새로운 이종 이식용 돼지가 나올 전망이다. 그만큼 면역 거부 반응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종 간 이식 연구, 왜 하나

선진국에서 다른 생물체의 장기를 이식하는 연구에 힘을 쏟는 이유는 장기 기증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종 간 이식 연구가 활발한 미국의 경우 2020년 기준 이식 대기자 수가 10만6550명이나 됐지만 실제 이식을 받은 사람은 3만900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환자들은 기증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대기 환자 수가 장기 기증자를 크게 웃도는 상황은 연구 개발 속도를 더 높이는 효과를 냈다. 미국 리비비코어(Revivicor)사가 개발한 이종 이식용 돼지 장기는 원숭이에 이식했을 때 심장의 경우 945일, 신장은 260일간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리비비코어사는 이 실적을 기반으로 임상 시험까지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이종 간 장기 이식 필요성이 큰 국가로 꼽힌다. ‘장기 등 이식 및 인체조직 기증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이식 대기자 수는 4만1765명이었다. 이들이 장기 기증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평균 1228일이다. 평균 3.4년이 걸린 뒤에야 장기 이식을 받을 수 있다는 통계인데, 이 기간을 기다린다고 해서 장기 이식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공 장기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대안 격인 이종 간 이식 연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종 간 장기 이식 기술은 질병 치료의 길을 넓히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돼지 췌장을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이종 이식’ 임상 1상 시험을 승인했다. 이는 민간에서 개발한 이종 간 장기 이식 기술로 임상 허가까지 받은 첫 사례였다. 임상 시험 결과에 따라서는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당뇨병 치료에 획기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주도하는 심장과 신장, 각막 분야 연구 역시 임상 시험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이 연구를 맡고 있는 오건봉 국립축산과학원 박사는 “미국보다 7년 정도 연구 시작 시점이 늦었지만 미국 기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범영 국립축산과학원장은 “사람 간 동종 이식과 비슷한 수준으로 거부 반응이 없는 돼지를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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