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샛강에서

[샛강에서] 소이산에 올라

우성규 미션탐사부 차장


강원도 철원군 관전리 노동당사 인근에서 산길을 오른다. 매일 오후 5시 해 질 무렵 시작하는 기도의 시간이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는 침묵 속의 산행. 20여분을 걸어 1만2000보가 채워질 무렵 해발 362m의 소이산 정상에 도착한다. 북쪽으로는 원산까지 이어질 것만 같은 평강고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금강산으로 향하는 철로가 있던 곳. 철원평야 비무장지대(DMZ)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소이산 전망대다.

매일 이곳에 오르며 침묵 속에서 기도를 드리는 이들은 국경선평화학교 대표인 정지석 목사와 전영숙 사무국장, 래브라도 레트리버 반려견 ‘하루’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정 목사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2011년 연고가 없던 철원에 정착했다. 그해 10월 말 군부대가 철수하고 소이산 전체가 민간에 개방됐다. 그때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진행한 매일의 걷기 묵상이 10년을 훌쩍 넘겼다.

정 목사의 고백이다. “침묵 속에서 드리는 기도는 주로 저를 돌아보는 내용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내가 얼마나 평화적으로 살았는가. 나는 누구를 증오하지 않았는가. 작은 일에 분노하지 않았는가. 상처 주는 언어를 쓰지 않았는가. 이렇게 드리는 기도가 제 힘의 원천입니다. 소이산을 억지로 오르는 게 아니고 여기에 올라 기도를 해야 제가 하는 일에 힘을 얻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는 2013년 3월 1일 철원 민간인통제선 안에서 시작했다. 마태복음 5장 9절 산상수훈 속 예수님 말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에서 비롯했다. 10년간 말씀 속 피스메이커인 평화운동가 30여명을 육성했다. 3만여명의 청소년과 시민이 국경선평화학교를 통해 DMZ 평화교육을 받았다. 강원도 동쪽으로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 경기도 서쪽으로 연천군 파주시 김포시 강화군 백령도까지 500㎞를 걷는 DMZ 평화순례도 이어왔다. 지금은 1만명이 동참하는 학교건물 건축 참여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지난 14일 소이산에 함께 오른 정 목사는 국경선평화학교 출판부의 책 ‘피스메이커 서광선 이야기’를 건넸다. 지난 2월 91세로 별세한 서광선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명예교수가 생전 이곳에서 연속 강의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서 교수는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그리고 2년 뒤인 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교회의 화해와 만남을 이끈 주인공이다. 책에는 6·25 때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목회자 부친의 시신을 끌어안고 외쳤던 당시 서 교수의 육성이 나온다.

“아버지 시신이 네 분의 목사님들과 함께 밧줄에 묶인 채 얼굴과 온몸에 총알이 뚫고 들어간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중략) 아버지 손에서 밧줄을 풀고 시신을 안고 손으로 총알 맞은 핏자국을 어루만지면서 ‘아버지 원수를 갚겠습니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중략) 전쟁 상황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는 일을 배워야 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것이 평화를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국민일보 미션탐사부는 ‘근원으로 돌아가자’ 구호의 종교개혁 주일을 앞두고 초대교회에서 한국교회가 되짚어야 할 가치를 연속 보도하고 있다. 나그네와 이주민을 환대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되갚지 않고 용서하는 공동체였던 초대교회의 특징을 보도했다. 이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건강한 성 문화를 지닌 보수적 관점의 보도를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6·25라는 내전을 겪은 한국교회가 지금도 어려워하는 용서의 덕목을 찾아 철원 소이산에 올랐다.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는 신앙의 힘으로 가능했다.

우성규 미션탐사부 차장 mainport@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