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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친환경 염소 제초기

이동훈 논설위원


한반도에서는 염소를 삼국시대부터 키웠다. 현재 국내 사육 수는 50여만 마리로 조상 격인 양(1000여 마리)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지만, 양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러 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사에 ‘희생양’이 쓰이는 전통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우리의 옛 기록도 이를 증명한다. 세종실록에 “종조 제사에 면양을 쓴다. 종전에는 염소를 면양 대신 이용했다”고 기록돼 있고, 연산군실록에는 “제사에 쓸 면양이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아 염소를 대용했다”고 나와 있다. 사람이 야생에서 길들인 가축 가운데 소, 토끼, 말, 닭, 개, 돼지와 함께 양이 12간지(干支)에 당당히 포함돼 있지만 염소는 제외된 것도 아류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식용 용도로는 양보다는 염소가 더 대접을 받는다. 본초연의에 양의 품목 가운데 흑염소가 가장 약효가 높다고 할 정도로 보양식 계열에선 최고의 평가를 받아왔다. 개를 이용한 보양식 판매가 금지된 미국, 캐나다 등지의 한인사회는 조리방법이 같은 염소탕으로 타향살이의 ‘애환’을 달래곤 한다.

양은 온순해서 무리 짓는 속성이 있지만 염소는 호기심이 많아 어디든 혼자 잘 돌아다닌다. 염소의 이런 거침없는 성격을 간파한 것일까? 지난 31일(현지시간) 미국 전력업체 ‘컴에드’가 시카고강 일대에 염소 떼를 동원해 제초 작업에 나섰다. 일리노이주 목장에서 데려와 5개의 크루즈에 나눠 태운 뒤 강을 따라 시내 마천루 관광을 시켰다. 관광을 마친 200여 마리 염소들은 송전탑 아래나 전선 주변, 깊은 계곡, 덤불 지대 등 사람 손길이나 기계의 접근이 어려운 녹지에 자란 풀을 먹어치웠다. 이처럼 염소들의 진짜 여행 목적은 이 회사의 친환경 전력 솔루션을 홍보하는 것이다. 염소를 이용한 녹지관리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잡초 때문에 일어날지도 모를 전기 안전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카고 나들이를 마친 염소들은 다음 목적지인 매티슨 주립공원으로 향한다. 한치의 웃자란 풀도 용납지 않아 연일 제초용 기계 소리로 가득 찬 한강공원에도 ‘잔디깎이’ 염소 떼의 나들이 진풍경을 상상해본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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