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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제주에서의 반나절

우성규 미션탐사부 차장


한국선교신학회 소속 학자 40여명과 함께 지난 20일 제주도 서쪽 지역 교회들을 순례했다. 제주영락교회와 제광교회가 제공한 버스 2대에 나눠 탄 선교학 교수들은 서귀포시 중문에서 출발해 대정읍 대정교회에 도착했다. 대정교회는 제주 출신 첫 목회자이자 동시에 첫 순교자인 이도종(1892~1948) 목사의 유해가 봉안된 곳이다.

이 목사는 1908년 고향인 애월읍 금성리에서 이기풍 선교사를 만나 전도자의 삶을 시작한다. 3·1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를 위한 자금 모금 활동에 조봉호 조사와 함께 나섰다가 옥고를 치렀고, 시국 관련 설교 등으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1926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제주에서 10여개 교회를 돌보며 목양에 힘썼다.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강요받았을 당시에는 사역에서 은퇴해 고산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환난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광복 후에는 와해된 제주 교회들의 회복을 위한 순회 목회에 힘쓰다가 1948년 4·3사건 발생 직후인 6월 운명의 날을 맞이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을 돌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순회 목회를 떠난 이 목사는 대정읍 인향동 사거리에서 산에서 내려온 무장대와 마주친다. 공산주의자들은 목회자에 대한 적대감이 있었고, 구덩이를 파서 이 목사를 들어가게 했다. ‘주님을 영접하시오’란 말을 남기고 생매장당한 이 목사의 시신은 1년 뒤 우연한 계기로 발견된다. 마을에 내려온 무장대 가운데 한 명이 이 목사의 동생들 집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적발됐는데 행방불명된 이 목사의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가 매장지를 진술하자 인성(대정)교회 고산교회 화순교회 성도들이 달려와 이 목사의 시신을 발굴했다. 비둘기색 두루마기에 카이저 수염을 한 그는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로 파묻혀 있었다.

아쉬운 점은 이 목사를 비롯해 여러 구의 시신이 발견된 지역이 지금도 풀밭으로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일행을 안내한 제주기독교순례길연구회 심현구 총무는 “이 목사 추모비와 표지석이 도로 한쪽 편에 세워져 있지만 매장지는 아직도 잡목에 덮여 있다”면서 “가톨릭이 제주 최초 천주교인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을 성역화하거나 김대건 신부의 표착 기념지를 기리는 활동과 비교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일행은 일제의 신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예배당을 세운 강문호 목사의 한림교회, 제주의 첫 자생적 예배 공동체로 시작한 금성교회 등을 둘러봤다. 이후 배형규 목사 순교비가 있는 제주영락교회로 옮겨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돌아보는 데 딱 반나절이 걸렸다. 배 목사는 제주영락교회 출신으로 2007년 성남 샘물교회 성도들과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를 갔다가 탈레반에 피랍됐고, 총구 앞에서 성도들을 보호하다 먼저 희생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는 2010년 배 목사를 6·25전쟁 이후 첫 순교자로 추서했다.

제주 올레 도보 여행객 1000만명 시대다. 2007년 올레 1코스를 개장하며 시작된 제주의 도보 여행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굳건한 성장세를 이어가 올해 2월 누적 탐방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올레길 전체 26개 코스를 완주한 1만 번째 완주자도 나왔다. 체력을 요하는 걷기 여행은 아닐지라도 가족과 함께 렌터카를 빌려 2박3일 제주에서 휴식을 취하는 문화가 대세다.

멋있는 곳과 맛있는 집을 찾아가는 제주 여행이 주류이지만 크리스천이라면 2박3일 가운데 반나절만이라도 제주 기독교 순례길의 주요 지점을 둘러보자고 말하고 싶다. 제주 올레길은 2000년 전 복음을 들고 당시 유럽의 땅끝까지 걸어간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를 기억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제주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우리의 옛길을 걸을 수 있다.

우성규 미션탐사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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