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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헤밍웨이가 알아본 재능… 화폭에 펼친 시적 상상력

[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40·<끝>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의 ‘구성’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국가에 기증된 호안 미로의 ‘구성’(1953, 96×377㎝). 벽화처럼 긴 캔버스에 기호로 단순화한 별과 새, 사람을 율동감 있게 배치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주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성장한 화가 호안 미로(1893~1983)는 1919년 프랑스 파리로 갔다. 한 해 전 바르셀로나의 한 화랑에서 전시를 열었지만 실패한 뒤였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여긴 26세 피 끓는 청년 화가가 큰물에서 놀겠다며 예술의 수도로 간 것이다. 하지만 파리에서도 그림이 안 팔려 아사 직전의 상태로 지내야 했다.

호안 미로. 위키피디아

이국에서 온 가난한 화가 미로는 박물관에 가서 위대한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게 낙이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다른 화가와 교유하는 즐거움으로 힘든 시기를 버텼다. 그중 한 명이 같은 스페인 출신 대선배인 파블로 피카소(1881~1873)였다. 피카소는 미로가 입체파 풍으로 그린 ‘자화상’을 구입하며 열 살 이상 어린 후배를 응원했다.

피카소가 구입한 미로의 ‘자화상’(1919). 국립현대미술관

수면 위로 떠 오르지 못한 신진 작가를 격려해준 눈 밝은 컬렉터가 또 있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였다. 20대의 헤밍웨이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미로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실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헤밍웨이는 미로의 작품 ‘농장’(1921~1922)을 샀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이 세상 어떤 그림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아끼고 자랑했다. 미로에겐 궁핍을 벗어나는 계기가 돼준 그림이었다. 컬렉션은 이런 거다. 안목 높은 컬렉터가 사주는 작품 하나가 좌절과 포기 직전에 있던 미완성의 화가가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돼 준다. 훗날 이 작품은 뉴욕의 현대미술관(모마)에 기증되는데, 모마의 당시 디렉터 알프레드 바는 “‘농장’은 호안 미로 인생의 걸작일 뿐 아니라 20세기 모더니즘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헤밍웨이가 구입한 미로의 ‘농장’(1921-22). 국립현대미술관

‘농장’은 이국 생활에 지친 미로가 19년 여름 고국의 고향 마을 몬테로이그 농장에 가서 쉬던 시기에 그리기 시작해 파리로 돌아온 뒤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할아버지가 대장장이로 일한 본가 몬테로이그에는 유카라 나무와 올리브 나무, 말, 개, 양, 토끼, 도마뱀, 곤충 등 온갖 동식물이 있었다. 작은 예배당도 있어 미로에게 정신적 안식처, 영감의 원천이 된 장소였다. 작품 ‘농장’이 보여주듯 새로운 양식을 실험하던 곳이었다.

미로는 무역도시 바로셀로나에서 유명한 보석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인의 피를 물려받은 미로는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뜻을 좇아 17세 때 사무원으로 취직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자 깊이 절망한 그는 심하게 병이 났다. 부친은 몬테로이그에 사둔 농장에 아들을 요양 보냈다. 이곳에서 자연에 매혹돼 지내면서 건강을 회복한 미로는 미술학교에 등록하며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미로는 처음 야수주의와 입체주의를 접하며 그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시인들을 만나며 예술세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미로는 화가보다 시인들과 더 잘 어울렸다.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등이 그들이었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이성과 전통에 대한 반발 속에서 탄생했다.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영향을 받아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무의식 세계,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걸 추구하는 예술 사조를 말한다. 문학인과 미술인이 함께한 운동이었다. 24년 앙드레 브르통이 그 유명한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며 구체화했다.

“나는 파리에서 화가들보다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송이 소개해준 (초현실주의) 시인들에 더 끌렸다. 그들이 전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특히 그들이 논하는 시에 끌렸다. 나는 밤새 시를 포식했다.”(호안 미로)

미로의 작품이 시적인 함축성과 상징성을 갖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는 이미지를 기호화해 화면 속에 조형적이면서 율동감 있게 배치했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을 만나면서 이전과 달리 상상력의 눈으로 화폭을 채우며 나타난 변화였다. 작품 ‘농장’에는 몬테로이그의 풍경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실제처럼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형태는 단순화되고 평면화됐다. 의도적으로 반복되며 리듬감을 갖고 있다. 사다리 등 향후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상징의 원형들이 들어있다. ‘농장’은 말하자면 미로가 초현실주의로 가는 가교 같은 작품이다.

25년 미로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파리의 화상 피에르 레브를 만나 전시를 열며 첫 성공을 거둔다. 현지에서 앙드레 마송, 이브 탕기, 조르조 데 키리코, 막스 에른스트 등 초현실주의 작가의 첫 집단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포함됐다. 헤밍웨이가 작품을 사 준 몇 년 뒤의 일이었다. 미로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초현실주의 초기작인 미로의 ‘모성’(1924). 전형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머리카락이 뻗은 머리와 원추형의 몸체가 가는 선으로 연결돼 있다. 벌레처럼 생긴 미생물이 젖을 먹으려는 듯 양옆 유방을 향해 기어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로의 작품은 기묘하고 환상적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꿈의 세계를 그리지 않는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쓰는 자동기술법도 쓰지 않는다. 그를 이끄는 것은 상상력이라는 눈이며 이는 쉼 없이 풍성한 이미지를 제공했다고 평전 ‘호안 미로’를 쓴 롤랜드 펜로즈(1900~1984)는 말한다. 그는 상상력과 즉흥성을 기반으로 이미지들을 기호화했다. 마치 이미지로 표현한 초현실주의 시 같다. ‘모성’(1924)에서 보듯 원주, 피라미드, 원기둥 등을 써서 인간의 신체와 성기를 묘사하기도 하고 ‘카탈루냐의 농부’(1925)에서 보듯 수염 같은 선 몇 가닥, 눈, 바레티나(농부가 쓰는 전통모자) 등 도형 같은 이미지로 농부를 기호화한다. 이런 그를 두고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작가 중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작가”라고 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미로는 뉴욕을 방문했다. 194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기에 이미 유명했다. 당시 그의 회화 세계는 “경쾌함, 햇빛, 건강, 색채, 유머, 리듬”으로 요약되며 화제를 모았다. 어느새 50대의 중견 작가가 된 미로는 잭슨 폴록, 로버트 마더웰 등 젊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지만, 그들로부터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미로의 작품 세계에서 별과 여성, 새는 중요한 모티브다. 특히 여성은 관능적인 존재가 아니라 출산의 근원이며 우주 만물의 기원과 같은 요소로 인식됐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국가에 기증된 ‘구성’(1953)에도 그런 요소들이 기호화돼 나온다. 고향 카탈루냐의 바다색을 떠올리게 하는 파란 바탕에 별과 자유롭게 나는 새, 그 새처럼 자유롭게 나는 인간이 기호처럼 표현돼 있다. 그 자유를 부러워하는 듯 고개를 꼬고 바라보는 듯한 사람도 있다.

‘구성’은 가로 4m에 가까운 대작이다. 마치 벽화처럼 큰 캔버스에 그런 기호화된 이미지와 색채가 반복되며 리듬감 있게 배치돼 있다. ‘구성’이라는 제목을 취함으로써 형태와 색채의 조형적 배치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손자 다비드는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상상력에서 나온 색과 기호의 지휘자와도 같던 할아버지가 공기처럼 가벼운 손으로 빈 공간에 형태를 그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이건희 컬렉션 ‘구성’은 색과 기호의 지휘자 미로를 떠올리게 하는 걸작이다.

*‘명작 in 이건희 컬렉션’에 관심을 보여준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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