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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일어나 걸으라

우성규 종교부 차장


지저스 트레일(Jesus Trail)은 이스라엘 북동부 나사렛에서 갈릴리 호수 옆 가버나움까지 65㎞의 여정이다. 나흘에 걸쳐 도보여행하며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든 가나, 오병이어의 나눔이 행해진 타브가 등을 돌아본다. 공생애 기간 예수님이 수차례 오고 간 길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여정(Jesus’ Last Journey)은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남쪽 예루살렘까지 193㎞의 길이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직선 길이지만 유대인에게 적대적인 사마리아인들이 살기에 보통은 이를 돌아서 걷곤 했다. 십자가 고난을 앞둔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여리고를 지나 베다니를 통해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 후 갈릴리로 가서 제자들을 만났으니 이 마지막 여정은 왕복으로 계산해 386㎞다.

이어령(1934~2022) 전 문화부 장관은 유작 ‘먹다 듣다 걷다’(두란노)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걷기 사역”이라며 이런 길을 언급한다. 아기 때 나사렛에서 이집트까지 왕복 거리가 640㎞, 5세 이후 30세까지 유대인 예법에 따라 1년에 세 번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오고 간 거리가 2만9000㎞, 복음서에 기록된 공생애 3년간 이동 거리가 5000㎞인 것으로 본다. 합치면 3만4640㎞로 지구 한 바퀴(4만74㎞)에 버금간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된 마가복음은 ‘길 위의 예수’를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로 출발해 간결한 문체로 역사적 사건의 연대기를 서술한다. 갈릴리 호숫가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 기지였다. 벳세다에서 시각장애인을, 게네사렛에서 많은 병자를 고쳤고, 멀리 북쪽의 두로와 시돈에서는 귀신을 쫓아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선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다.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예수님은 남쪽으로 걷고 또 걸은 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며 예루살렘에 들어간다. 길 위에서 걸으며 행동하는 사역이었다.

이 전 장관은 책을 통해 “한국교회가 걸어야 새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걸으며 기부하는 일에 동참하자고 호소한다. 기아와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난민들을 위해 매일 일정 구간을 걷고 그 걸음 수만큼 재정을 적립해 물질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아 먹고 듣고 걷는 것으로 실천하는 교회의 프로그램이며, 정치인들의 퍼주기와는 다른 ‘얼굴 있는 복지’라고 강조한다.

이 전 장관은 “1만명씩 매일 걷는다면 그 걸음 자체가 기도가 된다. 그러면 내 몸은 튼튼해지고, 그 사람은 천사를 만나는 것”이라며 “그렇게 10만명이 걸으면 10만명이 천사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걷는 것이 기도란 생각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 수 있다면 한국을 넘어 세계가 변화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자는 국민일보 토요판 더미션에 7주마다 ‘걷기 묵상’을 연재하고 있다. 걸으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걷는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이 새겨진 충남 아산 현충사, 템플턴상을 받는 영예의 순간에 죄인임을 고백한 한경직 목사의 남한산성 우거처, 십자가 ‘처럼’ 새겨진 서울 서촌의 윤동주 발자취, 믿음을 삶으로 보여준 부산의 장기려기념관 등지를 찾아 걸었다. 걷는 길 위에서 신앙의 원형을 만난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는 성전 앞 미문에서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고 외친다. 교회의 시작, 베드로의 저 말을 떠올리게 한 이 전 장관의 마지막 당부를 기억한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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