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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코로나 시대의 육아가 남긴 것

박지훈 종교국 차장


코로나19가 퍼지던 재작년 3월에 쓴 ‘코로나 시대의 육아’라는 칼럼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치니 기댈 곳은 가족밖에 없더라→이런 생각을 하는 게 비단 우리 부부만은 아니더라→차제에 가족이 모든 짐을 걸머지는 한국 사회 독박의 구조를 재고해보자.’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칼럼이라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 탓에 욱여넣은 주장이었을 뿐 행간을 담으려 했던 건 지극히 개인적인 넋두리였다. 2년 전 우리 부부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은 탓에 진종일 육아와 일 사이에서 널뛰기를 해야 했다. 딸아이는 저글링에 동원된 공처럼 처가와 친가를 오가곤 했다. 짜증과 한숨이 폭설처럼 쌓이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한 소설에 등장하는 이런 문장으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 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어쨌든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 시대도 저만치 출구가 보이는 듯하다.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세가 거세지만 최후의 위기 운운하는 말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상회복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라고 했고, 김부겸 국무총리는 “마지막 고비가 될 수도 있는 코로나의 거센 파고”라고 말했다. 정부의 방역 시스템도 최근 고위험군을 집중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자주 육아 공백을 경험해야 했던 부모들에게 지난 2년은 노심초사의 시간이었다. 어린이집의 긴급보육 시스템 덕분에 등원 자체가 불가능한 때는 많지 않았으나 교사나 원아 중 누군가 확진 판정을 받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코로나의 터널을 통과하는 내내 모든 사람이 그렇듯 우리 부부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자주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많은 시간을 육아에 할애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더 긴 시간을 아이와 씨름해야 했다.

2년 전 작은 충격에도 쉽게 허물어질 것 같던 아기는 천천히 자라 이제는 차돌처럼 야무진 아이로 성장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코로나 덕분에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부모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도 늘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생기는 것이고 내 부모의 고충을 이해하는 일이었으며 이제는 가뭇없이 사라진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자주 떠올려보게 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는 부족할 듯싶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2018년 8월 작고한 황현산이 남긴 글을 옮기는 거로 갈음할 수 있겠다. 황현산은 생전에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유명했다. 2014년 11월 8일부터 세상을 떠나기 40여일 전까지 트위터에 8554건의 글을 올렸는데, 그의 글은 선득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때론 뭉근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곤 했다. 황현산은 2016년 5월 24일 새벽 4시56분에 딩크족 젊은이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출산을 장려하면서 “애 갖기는 겸손의 표시”라는 트윗을 남겼다. 이 표현이 얼마간 논란이 되자 같은 날 오후 4시34분엔 이렇게 부연했다.

“겸손이란 혼자의 힘으로는 못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 가장 중요한 협조자는 시간이고 역사다. 삶이 내 세대의 생명으로만 끝난다면 나는 신중하게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삶이 미래에도 속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여기서 힘도 얻는 것이다.”

부모 노릇을 하면서 나는 내 삶이 먼 미래에도,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질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덧붙이자면 황현산은 같은 날 밤 8시43분엔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겸손은 경건함의 시작이고 자기 발견의 시작”이라고.

박지훈 종교국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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