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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그들이 있어 다행이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때로 1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일들이 며칠 새 몰아쳐 일어나기도 한다. ‘하나님이 나한테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지?’ 하는 일들.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을 비워달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집을 알아본 뒤 새로운 집을 계약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연락이 왔다. 월세를 크게 올리는 선에서 계속 사는 건 어떠냐고. 진작 그렇게 제안했으면 애써 집 구하러 돌아다니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릴없이 이사를 준비하는데 이사하기 전날 공인중개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들 방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계약할 때 분명히 작은방에 타공을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이제야 말을 바꾸는 것이다. 티격태격 다툰 끝에 구멍 하나 뚫는 일을 허락받았다. 집 없는 사람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다음 날 이사하는데 이번에는 바람이 세게 불어 사다리차를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 적잖은 짐을 엘리베이터로 지고 날랐다. 시간은 두세 시간 더 소요됐고….

이삿짐 트럭 먼저 떠나보내고 나는 뒤따라 자동차에 시동 거는데 엔진 경고등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곧장 정비소로 갈 텐데, 먼저 도착해 아파트 문도 열어줘야 하고 가구 배치도 알려줘야 하니 일단 달렸다. 그러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앞에 가는 차를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앞차와 거리가 꽤 됐는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곧장 견인차가 달려오고, 사고 처리를 하고, 렌터카를 부르고, 그러느라 1시간가량 도로 위에서 기다렸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운전경력 10여년 만에 처음 겪은 교통사고가 왜 하필 오늘이람. 그동안 ‘딱지’ 한 번 끊긴 적 없는데.

해 질 무렵 새집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이삿짐을 나르는 방식이 문제였다. 집주인이 분명 뜯어낼 수 있다고 말했던 발코니 차단벽이 뜯기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단다. 이제 와 그걸 따져 뭣하겠나. 일일이 모든 짐을 들어 날랐다. 일하는 분들의 표정은 흙빛이 되고, 짐 정리는 자정까지 끝나지 않았다. 웃돈 얹어 사례를 표한 후 그때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니 사고 차량 차주와 동승자들께서 모두 병원 진료를 받겠다고 하신다. 죄송합니다, 비용은 걱정 말고 모든 검사는 다 받아보세요. 거듭 죄송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났더니 울컥 눈물이 솟는다. 오늘 하루가 10년만 같구나.

또 다른 메시지가 있었다. “이사는 잘했습니까?” 편의점 점장이 보낸 문자. 그러고 보니 편의점을 까맣게 잊고 있었네. 이렇게 혼란스럽던 와중에 편의점마저 무슨 일이 있었다면 어떡했을까? 알바가 별안간 출근하지 않았다면, 소란 피우는 손님이 있었다면, 강풍 불어 바깥 시설물이 날아가거나 동파 사고라도 있었다면…. 생각하면 아뜩하다. 불행 중 다행을 찾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지만, 이렇게 바깥일 보는 가운데 내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을 느낀다. ‘그나마 다행’이 아니라 그들이 있어 오늘을 든든히 사는 것이다. 올해의 액은 이렇게 다 치렀으니 내년에는 복이 쏟아지길.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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