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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혐의 부인하면 끝…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중요

[검찰 조서 증거능력 사라진다] ② 수사기관 자백, 법정서 달라진 까닭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근 의뢰인들과 기소 시점별로 대응 전략을 달리 세우고 있다. 기소유예가 기대되는 사건은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하려 노력하되, 만약 해를 넘겨 재판에 넘겨진다면 법정에서 무죄를 다투겠다는 구상이다. 물증 대신 진술 위주로 구성된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변호사는 “내년부터 피고인이 더 유리해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 의뢰인이 많아졌다”며 “순순히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받느니 ‘한번 붙어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해도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면 검사 피의자신문조서(피신)는 유죄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조사실에서 이뤄진 검사와 피의자의 문답은, 법정으로 장소가 바뀌면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셈이다. 이 같은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내년 이후 기소되는 사건부터 적용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객관적 증거가 분명하지 않은 사건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는 경우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 피신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 형사사법제도의 특성이었다. 미국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할 때 조서를 작성할 의무가 없다. 독일은 법정 진술에만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이른바 ‘공판직접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됐다가 지난 10월 무죄가 확정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검사 조서로 재판하는 경우는 없다”며 2019년 6월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했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판사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은 뒤 법관 사회에선 ‘검사 피신을 무조건 믿어선 안 되겠다’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이어져온 수사·재판 관행의 변화를 앞둔 법조계의 표정은 기대와 불안이 엇갈린다. 경찰에서 피신조서를 작성한 뒤에도 검찰이 증거능력 확보를 위해 재차 피신조서를 받던 이중수사 관행이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 크다. 피의자가 자백한 사건이라 해도 별도 보강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 방식이 자리를 잡았고, 피신 작성에 소요되던 인력을 제3자 진술 및 객관적 증거 확보에 투입한다면 수사의 질적 향상과 실체적 진실 발견에 한걸음 더 근접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고법 한 부장판사는 “현행 재판 실무는 법정 증언을 중심으로 하는 공판중심주의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내년부터 마약·성매매·사기 등 집단 범죄에서 공범들이 검사 피신을 부인하고, 법정에 나와 일제히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공범 외에 목격자가 없는 사건들은 피의자들이 소위 ‘죄수의 딜레마’에 놓이곤 했다. 다른 공범이 본인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하기 전에 먼저 범행을 자백하는 것이 정상 참작 등에 유리한 경우도 있었다.

최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설계자’로 지목되던 정영학 회계사는 정·관계 로비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검찰에 제공했고, 이른바 ‘대장동 4인방’ 가운데 유일하게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그가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불구속 사유로 들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는 지난 10월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다수 공범이 얽힌 사건에서 모두가 증언거부권을 행사하고, 검사 피신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공범 전부에 대한 무죄 판결이 불가피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손정아 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는 “피의자와 공범 진술이 핵심 증거인 사건에선 증거능력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검찰과 법원은 각자 수사에서의 ‘증거 수사 강화’와 재판에서의 ‘충실한 구술심리’라는 법 개정 취지에 맞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재경지검 한 검사는 “조서 대신 객관적 증거로 혐의를 입증하라는 것이 법 개정 취지인 만큼 뾰족한 대안은 없다”며 “검사들이 개별 재판부를 상대로 최대한 혐의를 입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 절차 등에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그건 법원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 양민철 임주언 조민아 구승은 박성영 기자 listen@kmib.co.kr

[검찰 조서 증거능력 사라진다]
▶①‘가야할 길’엔 이견 없지만… 무죄율 상승·재판 장기화 불가피
▶③검찰 조서 없는 재판… 조사자 증언·플리바기닝이 대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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