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염원 새긴 기념비·조각상·연못 어우러져 ‘보행자 천국’

[세계의 광장을 가다] ⑮ 바르셀로나 카탈루냐광장 (끝)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은 주요 도로가 만나는 곳에 넓게 조성돼 있어 도심 속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많은 시민들이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쉬거나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모습이 평화롭다.

“카탈루냐광장 부근 라람블라 거리가 끝나는 지점은 상황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모든 건물밖에 내걸린 정당 깃발이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모래 자루로 방어벽을 친 백화점 측면 창들은 우리 관측소와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은 붉은 깃발을 끌어내리고 카탈루냐 국기를 게양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1930년대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 ‘카탈루냐 찬가’의 한 대목이다. 가로수가 멋있는 보행자의 천국, 일곱개의 번화한 거리가 만나는 카탈루냐광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바르셀로나의 거의 모든 버스와 지하철 노선이 이곳을 지난다. 광장 한 가운데엔 대리석 바닥의 열린 공간이 있고 주변에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코로나19가 유럽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월 17일 찾아간 카탈루냐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쉬거나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벤치와 비둘기는 도심 속 휴식을 연상케 하는 코드다. 그라시아 거리를 지나 람블라스 거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카탈루냐광장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두 광장인 카탈루냐광장과 에스파냐광장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카탈루냐광장이 보행 중심의 광장이라면, 에스파냐광장은 차량 중심이다. 카탈루냐는 주 이름이고 에스파냐는 국가명인데, 왜 카탈루냐광장이 바르셀로나의 중심 광장이 됐을까. 그건 역사적인 배경 때문일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가 마드리드 중심의 카스티야로부터 독립하려고 했던 그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는게 아닐까.

카탈루냐 광장 주변에 설치된 프란세스코 마시아 기념비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강한 독립염원을 담고 있다.

카탈루냐광장 주변에는 여러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그중 프란세스코 마시아 기념비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강한 독립염원을 담고 있다. 프란세스코 마시아는 카탈루냐 자치정부인 헤네랄리타트 수반이었다. 헤네랄리타트는 중세시대 카탈루냐가 독립왕국이었을때부터 존재했던 지방정부를 가리키는 말로, 카탈루냐인에겐 독립과 자치를 상징하는 단어다. 1931년 4월 스페인에서 선거가 실시됐는데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카탈루냐 공화 좌파가 승리해 프란세스코 마시아가 이끄는 자치정부가 수립됐다. 앙숙지간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카스티야 왕국와 아라곤 왕국에 속했던 지역으로, 서로 다른 나라였다. 그런데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공주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가 결혼함으로써 양국은 통합돼 오늘날의 스페인이 됐다. 하지만 통합 왕국의 주도권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가 쥐게 됐고, 이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때 패배해 주권을 상실한 카탈루냐는 줄기차게 독립을 요구했지만 중앙정부로부터 매번 거부당했다.

카탈루냐광장 한쪽에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안에는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상이 있는데 호셉 클라라 작품으로,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비너스 상을 연상시킨다. 카탈루냐광장의 두개의 분수대 사이엔 네 개의 조각상이 있다. 호셉 클라라의 ‘청춘’, 엔리크 카사노바의 ‘여인상’, 호셉 빌라도마트의 ‘플루트를 들고 있는 아기 엄마’, 호셉 이모나의 ‘대장장이’다. 광장 중심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청동 조각상들은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을 상징한다.

람블라스 거리는 거리의 악사와 행위 예술가 등으로 항상 흥겨움이 넘친다.

광장에서 콜럼버스 기념탑 방향으로 뻗어있는 1.3㎞의 전용 보행도로인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지로 예술작품, 카페, 레스토랑, 가우디 건축물 등이 모여있다. 거리에는 언제나 행위 예술가들과 악사들로 흥겨움이 넘쳐난다. ‘람블라’는 아랍어로 ‘물이 흐르는 거리’를 의미한다. 람블라스 거리의 바닥 물결무늬가 바로 이곳이 원래 개울 자리였음을 알려준다. 람블라스 거리의 또다른 명물은 낭만적인 분위기의 꽃가게들이다. 매년 4월 23일은 산 조르디의 날로, 남성들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장미꽃을 주는 풍습이 있다. 이날에는 람블라스 거리가 장미꽃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콜럼버스 기념탑 꼭대기에 서 있는 콜럼버스가 자신이 항해한 대서양을 가르키고 있다.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콜럼버스탑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에 보케리아 시장이 있다. 11세기부터 시작된 역사가 깊은 시장이다. ‘보케리아’는 카탈루냐 말로 ‘고기를 파는 곳’이라는 뜻이다. 로마시대 바르셀로나 성벽이 존재하던 시절 성밖에서 고기를 팔던 상인들이 모여든 것이 나중에 보케리아 시장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하몽을 비롯한 각종 고기들과 해산물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이목을 끈다.람블라스 거리 끝에는 파우 광장이 있다. 콜럼버스 기념탑과 마주보는 곳이다. 그 앞으로 지중해와 접해있는 바르셀로나 항구가 펼쳐진다. 바르셀로나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콜럼버스가 이사벨1세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상륙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답게 바르셀로나 해변에는 많은 이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여유롭게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보케리아 시장은 로마시대 성밖에서 고기를 팔던 곳이 시장으로 발전했다.

광장은 분주한 도시 공간에서 ‘비움의 미학’이 느껴지는 곳이다. 거리는 어딘가로 향하는 목적성이 있는 반면 광장은 머물러 쉼으로 사람을 초대한다. 광장을 지나다보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카탈루냐 광장이야말로 바르셀로나 시민이나 관광객들이 머물러 휴식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우리나라도 시민들이 도심 속에서 여유있게 쉴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광화문광장이 대표적이다. 현재 진행중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되면 세종문화회관 앞에 물과 숲이 어우러진 공원이 조성된다. 세종로공원에는 사계정원이 조성되고, 이순신장군상 오른편에는 물놀이정원과 광장숲이 만들어진다. 세종문화회관과 현대해상 사이 광화문라운지에는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 그늘목을 심고 이동식 테이블과 의자 등 휴게시설을 배치한다. 해외에서 온 관광객이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서울역에 내려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1.55㎞구간에 조성된 ‘사람숲길’을 걸어 광화문광장에 도착하면 시민광장이 품은 공원에서 북악산을 바라보며 힐링을 할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광화문광장은 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번잡한 장소에서 시민의 일상 속 휴식이 있는 힐링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바르셀로나=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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