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일보는 28일 국내 미국 정치 전문가 5명과 미 대선 상황을 점검하고 결과를 전망하는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5명 모두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는 게 이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바이든 후보가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상당히 다른 캐릭터라는 점도 트럼프의 패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혔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바이든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낮다는 점이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를 늘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에는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았고, 이는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의 낮은 투표율로 이어졌지만 바이든의 경우 힐러리처럼 비호감도가 높은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유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미국 내 뜨거운 사전투표 열기를 거론하며 민주당 유권자들의 투표가 늘어났다는 증거라고 했다. 박 교수는 “트럼프 지지층의 경우 애초 변동성이 크지 않은 적극 투표층으로 전체 투표율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높은 사전투표율은 민주당 유권자 투표가 늘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재선은 2016년 당선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통적으로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지지 주)였으나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며 민주당에 대선 패배를 안겼던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3개 주를 바이든이 수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바이든은 러스트 벨트에서 먹히는 캐릭터”라며 “백인 노동자, 백인 노조원들과 정서적 유대관계를 쌓으며 수십년간 교감해온 인물이고,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강남좌파 이미지 등으로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외면했던 힐러리와 달리 바이든은 이들이 특별히 반감을 가질 포인트가 없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코로나19 창궐 후 러스트 벨트 3개 주의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4년 동안 고소득층 소득세율을 낮추는 등 부유층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며 화이트칼라 지지층은 일부 늘었지만 지난 대선 승리의 핵심 기반이었던 블루칼라 노동자 지지층은 상당수 이탈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로 코로나19를 꼽았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크게 확산되기 전 대선이 치러졌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경제성장률 3%를 기록하는 등 트럼프의 강점인 경제 분야에서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안 교수는 “코로나19가 결정적으로 트럼프의 재선 가도를 막아세웠다”며 “팬데믹을 거치며 중도층, 온건 성향의 공화당 지지 유권자, 노인층, 교외 지역 거주 여성 등에게 ‘트럼프가 대통령답지 못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모두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에게 더 많은 표를 줬던 계층들이다.
박 교수는 “코로나19가 트럼프 지지층의 분열로 이어졌다”면서 “본래 65세 이상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지지가 많았는데 이것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강조했다. 건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들 인구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코로나19 실정에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주류 기득권을 전복시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전자 이미지가 희석된 것도 지지층 이탈로 이어졌다. 안 교수는 “트럼프가 대통령인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니다”며 “주류 정치인의 이미지도 갖게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부패한 기성 정치인 힐러리 대 중산층을 잘살게 만들 트럼프’라는 대비가 먹혀들었던 2016년과 달리 트럼프 임기 4년을 거치며 트럼프가 빈익빈부익부 양극화만 심화시켰다는 회의가 감지된다”며 “중산층이 바이든으로 몰리는 표심 전환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의 분열은 지난 대선보다 줄었다. 정치학자이자 출판사 후마니타스 대표인 박상훈씨는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버니 샌더스 지지 세력과 힐러리 지지 세력으로 쪼개져 있었다”며 “이 같은 세력 간의 다름이 이번 대선 정국에서는 분열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이번 미 대선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외적 사례에 불과했는지, 정치 양극화 역사의 시작점이었는지를 가리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트럼프의 등장과 대통령 등극 자체가 미국 정치의 전통에서 상당히 벗어난 일이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미국은 오랫동안 공화당과 민주당 거대 양당이 인구 규모가 가장 큰 중도층 유권자들로 수렴하는 수렴적 양당체제를 유지해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중도층 공략보다는 분열을 극단으로 부추기는 양극화 정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질적 존재”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또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이 중도를 지향해온 미국 정치 풍토에 더 잘 맞는 인물이라면서 바이든 당선 이후 공화당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공화당에서 당 밖의 아웃사이더를 동원하려는 트럼프적 경향성은 줄어들고, 존 매케인이나 조지 W 부시 등으로 대표되는 온건보수 세력이 다시 공화당 주류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박 대표의 관측이다.
박 대표는 “이번 대선으로 미국의 정치 전통이 복원될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개시한 양극화된 정치 구조가 더 강화될지가 가장 중요한 관전포인트”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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