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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줄이니 풍경이 보이다… 느림에서 건진 ‘일상의 한국화’

학고재갤러리서 ‘김선두’展

김선두 작 ‘느린 풍경-덕도길’, 2019년, 장지에 분채, 133x160㎝. 학고재갤러리 제공

김선두(62·중앙대 교수·사진) 작가는 몇 해 전 서울에서 고가 위를 운전하다가 그날따라 ‘천천히’라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때 차의 속도를 줄였더니 아연 주변의 북한산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멀수록 색이 옅어지는 북한산이 수묵화처럼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래, 속도를 줄이면 인간다운 삶이 되는구나.”


김 작가는 이렇듯 일상에서 건진 깨달음을 진솔하게 표현함으로써 현대인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가 ‘일상의 한국화’ 19점을 가지고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김선두’를 연다. 작품들은 ‘느린 풍경’ 연작이 시사하듯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제동을 건다. 작가는 두꺼운 장지 위에 분채를 수십 차례 반복해 쌓으며 깊은 색을 끌어낸다. 색을 칠하는 과정 자체가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느린 풍경’ 연작에선 자동차 백미러에 비친 ‘SLOW(천천히)’ 글자와 주변 모습을 작게 오려 붙이듯 큰 화면 안에 넣어 큰 풍경 속의 작은 풍경 같다.

전체적인 풍경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평면적이고 추상적이다. 반면에 작은 풍경은 정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한 화면 안에 수직과 수평의 서로 다른 시선이 공존한다. 그 엇박자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있다.

‘별을 만들어드립니다’는 도로 주변 시든 옥수수밭에서 영감을 얻었다. 화면 위 빛나는 별과 시든 식물의 대비가 두드러지는데 마치 한 화면에 생명과 죽음의 이미지를 포용하고자 하는 것 같다. 동네 담장에 설치된 철조망, 출근길 도로 신호등, 삼겹살 구울 때 쓰는 부탄가스 등 일상 소재들이 작품으로 들어왔다.

그는 수묵화가 아닌 채색화를 한다. 작가는 “묵유오채(墨有五彩)란 먹에 다섯 가지 색이 내재해 있다는 말이다. 먹만으로 다양한 색채를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발상을 전환해 색으로 먹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김훈 소설 ‘남한산성’ 표지를 장식하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의 그림 대역을 맡아 대중적 인지도를 쌓기도 했다. 3월 1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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