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시론

[시론-민정훈] 북·미 비핵화 협상, 이제는 숨고르기 할 때

안보 상황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美대선 이후 2라운드 협상 재개 위한 여건 조성해야


최근 북·미 양측은 설전을 주고 받으며 치열한 신경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북한은 올 연말까지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자신이 설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협상 진전 실패의 책임을 미국 측에 떠넘기고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명분과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은 연말 시한은 북한이 임의로 설정한 데드라인이라며 북한에 협상의 장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있다. 북한의 대미 압박 강도가 거세짐에 따라 미국도 대응 수위를 높이는 한편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교착 국면이 올해 말까지 지속된다면 내년에는 보다 엄중한 한반도 안보 상황을 바탕으로 북·미가 치열하게 기싸움을 하며 비핵화 협상 1라운드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양측 최고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양측의 상이한 정치적 셈법이 가로막고 있고, 그 중심에 미국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은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북·미 협상의 조속한 진전을 원하고 이를 위해 선제적 입장 변화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보며 추후 대미 협상 전략을 구상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먼저 입장 변화를 보일 유인이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내 정치 상황 돌파를 위한 대북 협상 카드는 효용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여러 장 확보했기 때문이다. IS 지도자 알 바그다디 사살,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은 미국 내 부정적 여론을 환기시키고 나아가 내년 대선 국면에서 미국 경제 호황과 더불어 대외정책 성과로 내세울 카드들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이 끝날 때까지 ‘핵·미사일 실험 유예’라는 대북외교 성과를 유지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교착 국면이 올해 말까지 지속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내년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길’을 공식화하고 대미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주장하는 ‘새로운 길’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핵심으로 하는 자력갱생과 중·러 안보 협력으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통해 단기적으로 경제적 연명을 시도하는 동시에 중·러와의 안보 협력을 통해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려고 할 것이다. 한편 대내적 결속 및 대미 협상력 제고를 위해 군사력 강화, 재래식 도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미사일 엔진 실험 등 도발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의 ‘새로운 길’ 추구에 대해 대화의 장으로 복귀하라는 원론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북한의 도발 수위에 맞춰 대응 수위를 조절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추가 유엔제재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강화될 뿐 아니라 중국의 입장이 곤란해져 북·중 경제협력 및 관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판은 유지되나 기싸움이 치열해져 한반도 안보 상황은 보다 엄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우리 정부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정부는 북·미 비핵화 협상 1라운드가 안정적으로 마무리되고 내년 미국 대선 이후 전개될 2라운드가 신속하게 재개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새로운 길’은 북·미 협상의 불확실한 전망에 따른 단기적인 처방일 뿐이다. 북한은 내년 미국 대선이 끝나면 미국의 새 행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려 할 것이며, 이 때 또다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향후 북한이 돌아올 명분을 신중하게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다소 긴 호흡으로 숨고르기를 할 때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