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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 대통령, 북·미 간 중재자 역할 재정립할 때다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중재자로서 신뢰 얻지 못하는 상황… 한·미 공조 강화해야 북한과 미국 모두 설득 가능

청와대가 북·미 간 북핵 협상의 돌파구로 ‘굿 이너프(good enough) 딜’이라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단계적 접근을 원하지만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전 제재 해제는 없다며 빅딜을 주장하고 있어 중간 수준의 절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만간 공식 성명을 통해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미국이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면서 대결로 치닫기 전에 어떻게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반도가 북·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가 군사충돌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막고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중재자 또는 촉진자로서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은 문재인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한계에 부닥친 모습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남한 정부는 중재자가 아닌 플레이어”라고 말했다. 한·미 동맹 관계를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반면, 정부는 대북 제재 완화와 남북경협 확대를 놓고 미국과 엇박자를 냈다. 미국 조야에서 한국이 공정한 중재자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올 오어 나싱 전략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빅딜론과 간극이 있다.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중재자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진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돼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매체 기고문에서 문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평화 이니셔티브에 베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문재인정부가 남북 관계와 글로벌 이슈로서의 핵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충고했다. 그동안 남북 관계 개선을 지렛대 삼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이끌어낸다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 온 문재인정부에게 뼈아픈 충고다. 이제 차분하게 정부 역할과 목표를 재정립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중재자 또는 촉진자 역할을 재개하기 전에 한·미 공조를 점검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중재자로서 설령 미국을 설득하려고 해도 한·미 공조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를 북한이 신뢰할 리도 없고 비핵화 설득도 불가능하다. 한·미가 엇박자를 내는 상황에서는 설령 남북대화 채널을 가동한다 해도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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