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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예산안을 볼모로 선거제도 개혁하자는 건 몽니

총 470조5000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이 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러나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 의원들의 대거 불참으로 표결은 이뤄지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오랜 줄다리기로 헌법에 명시된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이 훨씬 지났음에도 예산안이 언제 처리될지 오리무중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 못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얘기마저 들린다.

이런 와중에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4일 민주·한국 양당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국회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앞서 국회 본청 앞에 천막당사를 차리고 국회 내 장외투쟁에 나선 평화당에 바른미래·정의당이 가세했다. 바른미래·평화 양당은 선거제도 개편 없이는 예산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연계 방침을 굳혔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야당이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도 개혁을 연계시키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라고까지 했다.

민의를 현저하게 왜곡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바꾸는 게 옳다. 국민 여론도 그렇고, 정치권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사안이다. 그렇다고 나라살림과 아무 관련 없는 선거제도 개편을 예산안과 연계하는 것은 몽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나 쓰던 낡은 정치행태로는 여론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더욱이 하나도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야가 정기국회 회기 내에 정치지형의 대변혁을 몰고 올 선거제도 개편에 합의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군소정당이 사활을 거는 이유를 잘 안다. 현행 선거제도로는 다음 총선에서 존폐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도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당과의 차별화도 꾀할 수 있다. 내년 예산안은 민주·한국당이 의기투합하기만 하면 군소정당 도움 없이도 처리가 가능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소극적인 양당이 그렇게 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럴 경우 세 당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못 면한다. 명분과 실리 모두 잃을 수 있는 하책은 쓰는 게 아니다. 예산안 처리에 적극 참여하는 게 세 당의 몸값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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