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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신구 화재에 무너진 스마트 사회

“계속 커지는 케이블 의존도, 5년 뒤 불난다면 피해 몇 배 더 클 것… 정부·기업 경각심 갖고 대비하라”

불이 제법 컸지만 그 자체로 재난이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에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건물 300㎡를 태워 직접적인 재산피해는 80억원 정도였다. 평범한 화재가 최악의 통신대란으로 번진 까닭은 전화선과 광케이블이 150m쯤 불에 탔기 때문이다. 서울 서북권 시민의 일상은 순식간에 멈춰 섰다. KT를 이용하는 유·무선 전화가 끊겼다. 카드 결제 시스템은 먹통이 됐다.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을 수 없었고 병원 응급실에선 진료기록 조회가 지연됐다. 배달애플리케이션이 작동하지 않으니 음식을 시켜먹지 못했으며 공공자전거 따릉이도 바라만 볼 뿐이었다. 휴대전화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던 스마트한 삶은 통신망이 단절되자 아날로그 시대보다 더 못한 환경에 내몰렸다. KT 화재는 우리 일상이 네트워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 연결망을 일거에 망가뜨린 것은 해커 공격도, 전자펄스도 아닌 불이라는 아주 재래식 변고였다. 10시간 만에 불은 다 껐지만 예전처럼 복구하려면 일주일은 더 걸릴 전망이다. 숨 가쁘게 구축해온 스마트 사회는 지속 가능성에 이처럼 중대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1994년 서울 종로와 대구, 2000년 서울 여의도에서도 통신구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과 비슷한 불길에 비슷한 통신두절 사태가 벌어졌는데 사람들의 체감도는 2018년이 훨씬 높다. 만약 5년 뒤 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면 체감 피해는 몇 배 더 커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상의 케이블 의존도가 갈수록 광범위해질 것임을 충분히 예고했다. KT 화재는 스마트화의 진행 속도를 사회의 제도와 의식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것이었다. 아현지사는 옛 원효지사를 통합한 시설이다. 분산돼 있던 케이블이 한 곳에 합쳐지면서 더 넓은 지역에 피해가 미쳤다. 기능은 커졌는데 안전장치는 강화되지 않았다. 통신선이 밀집한 지하 통신구에 소화기 1개만 달랑 비치돼 있었다. 통신구 길이가 500m 이상인 경우에만 자동화재탐지기와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한 법규를 ‘충실히’ 따른 조치였다.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법과 규정은 이번에도 현실보다 한 발 뒤져 있었다.

이번 사고는 시민 일상과 직결된 스마트 인프라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문제가 터져 나왔으니 매번 그랬듯이 정부는 제도 정비에 나설 것이다. 케이블에 의존하는 시대적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안전성을 높이는 것 외엔 길이 없다. 통신 네트워크는 국가기간시설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다. 이런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은 민간의 자본과 기술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관리·감독만으론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관련 기업들이 경각심을 갖고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안전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건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목적을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일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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