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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큰 흐름 잡힌 비핵화 여정… 이제 디테일에 신경 쓸 때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외교를 통해 북한 비핵화의 큰 흐름이 정리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다음 달 평양에 가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공식화했다. 몇 달간 막혀 있던 북·미 협상은 다시 궤도에 올랐고 구체적 비핵화 방식에 대한 논의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평양 정상회담과 유엔 외교의 목표였던 북·미 중재는 성과를 냈다. 비핵화 의지가 담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육성을 전하면서 불신의 골을 상당히 메울 수 있었다. 종전선언을 국제사회 어젠다로 부각시킨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를 협상카드 정도로 여기던 인식이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북핵 해결의 분수령이었던 9월 외교전이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 비결은 상상력과 유연함일 것이다. 선(先) 비핵화와 선 종전선언 주장이 충돌한 상황에서 접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추가적인 양보를 끌어내며 종전선언의 성격을 다시 규정하는 등 유연하게 대응한 것이 먹혀들었다. 어려운 건 있어도 안 되는 건 없는 게 외교다. 중재 역할을 자임한 정부의 북핵 외교는 이런 유연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비핵화는 이제 북·미 양국이 핵 폐기 방식과 상응조치에 합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절차를 밟게 됐다. 물꼬를 튼 과정은 남·북·미 정상이 직접 결단하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하향식 의사결정을 택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실무적 난제가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가 실행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절차도 결코 순탄할 리 없다. 문 대통령과 정부는 그런 고비마다 중재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상상력, 유연성과 함께 중재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균형과 섬세함이다. 미국에 북한 입장을 대변하고 북한에 미국 입장을 대변하는 식이어선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중재의 힘은 철저히 중간에 서 있을 때 극대화된다. 예를 들어 유엔총회 연설에서 국제사회에 대북 화답을 촉구할 때조차 북한을 향해서도 약속 이행을 재차 당부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큰 흐름이 잡힌 뒤에는 대부분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문제가 불거진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의회 인준청문회에서 남북의 GP 시범 철수에 대해 “비무장지대의 모든 활동은 유엔군사령부 관할”이라며 미묘한 발언을 했다. 통수권자의 지시를 받는 일개 사령관이 큰 흐름을 바꿀 순 없겠지만 이런 식의 불협화음이 누적되면 뜻하지 않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합의보다 이행이 어렵고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있다. 한반도 비핵화 여정은 아주 어렵게 시작됐다.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아져 많은 국민이 지지를 표명했다. 놓쳐선 안 될 기회인 만큼 정부는 유연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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