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설

[사설] 집단소송·징벌배상 없는 한국 소비자의 설움

결국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또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BMW 사태는 소비자를 무시하는 기업의 오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달리던 자동차에서 불이 나는 황당한 사고가 올해 들어서만 30건 이상 발생했다. 수수방관하던 BMW는 수십대가 불길에 휩싸이고 나서야 조치를 시작했다. 리콜을 받으러 간 소비자에게 7개월 뒤인 내년 1월 말에나 부품을 교체해주겠다고 했다. 긴급 안전진단을 받은 차에서도 불이 났으니 아직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왜 한국에서만 불이 나느냐는 의문에 “많이 팔려 그렇다”는 허탈한 답변을 내놓았다. 답답해진 정부가 직접 원인을 찾아보려는데 조사에 필요한 사고 차량 부품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2015년 아우디·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당시 집단소송과 징벌배상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소비자를 기만하고 면피로 일관하는 행태를 막으려면 웬만한 선진국은 다 갖춘 두 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거였다. 정부와 국회는 이를 법제화하지 못했고 3년 만에 ‘불타는 BMW’로 한국 소비자는 다시 봉이 됐다. 징벌배상제는 제조사에 소비자 피해액보다 훨씬 큰 배상액을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차 분쟁의 경우 6000만원 벤츠 구매자에게 차량 가격의 8배가 넘는 5억원을 배상케 한 사례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절대로 소비자 피해를 외면하지 못한다. 국내에도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제조물책임법에 징벌배상 규정이 신설됐지만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만 해당한다. 이번처럼 재산 피해만 있을 때는 적용되지 않고 배상액도 최대 3배로 제한돼 있다. 집단소송제는 징벌배상의 효과를 높이는 장치다. 피해자 일부만 소송을 진행해도 그 결과가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BMW 차주 몇 명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아직 이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 BMW는 패소해도 그들에게만 배상하면 그만이다.

화재 사태에서 BMW의 늑장 대응은 몇 달 정도지만 정부와 국회가 집단소송·징벌배상에 늑장을 부린 건 3년이 넘는다. 이번에도 넘어가면 한국 소비자는 머잖아 또 당할 것이다. 이미 많은 토론과 논의가 이뤄진 제도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행동에 나서라.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