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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최현수] 정상회담 이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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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상화 된 ‘정상회담’이라는 말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이다. 냉전시기였던 1950년 2월 14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연설하던 처칠이 소련 최고위층과의 회담을 제안하면서 “정상(頂上)에서의 회담으로 인해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역사학과 교수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저서 ‘정상회담’에서 ‘정상회담’이라는 말이 이때 처음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처칠이 정상이라는 말을 쓴 것은 당시 험준한 산을 정복하려는 열기가 높았던 점에 착안했다. 산꼭대기를 의미하는 정상은 올라가기도 힘들지만 일단 정복하면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어 매력적인 장소이다. 처칠이 이 표현을 쓴 데는 정치적 함의(含意)가 있었다. 그에게 정상에서의 회담은 극적인 행동으로 새로운 전망을 펼칠 수 있는 한판 승부를 뜻했다. 또 정상회담은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도자가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것으로 지도자의 명성이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일단 시작하면 물러서기 불가능한 여행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의 이런 성격은 정치 지도자들을 유혹한다. 정상회담에는 묘미가 있다. 정상회담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외교관들이 수많이 협의했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일을 풀어내기도 한다. 정상회담을 통해 역사적인 종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미·소가 첨예하게 경쟁했던 61년의 ‘빈회담’은 실패였다. 니키타 흐루시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소련은 당시 유럽과 독일에서의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미국은 거듭되는 소련의 핵실험을 억제해야 했다. 서로 날선 비판을 해온 두 나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벼랑 끝보다는 정상에서 만나는 것이 좋다”는 말을 거듭하며 회담을 추진했다. 만남은 이뤄졌지만 불신의 골은 더 깊어졌다. 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뤄진 이스라엘과 이집트 정상 간 회담인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합의를 도출해 성공한 정상회담으로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은 실패한 회담으로 귀결됐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의 앙금이 폴란드인 가슴에 남아 있던 70년 12월 7일.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는 비가 내리는 바르샤바의 게토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게토 추모비는 2차 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40만명을 추모하는 것이었다. 브란트의 행동은 폴란드인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켰다. 성공적인 정상회담이었다.

7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도 일단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공조를 강화하고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미국의 첨단무기 구매약속을 얻어냈다. 이 회담이 최종적인 성공으로 평가 받으려면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어져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첨단자산 도입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미국이 팔고 싶어 하는 무기류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첨단기술이전도 확실히 해야 한다. 지난 2011년 공군 주력기 F-15K의 야간 저고도 항법 및 조정 장비인 ‘타이거 아이’의 봉인훼손 문제로 공군이 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조사를 받았다. 당시 미국은 한국이 타이거 아이의 기술을 훔치려고 봉인을 훼손했다고 생각했다. 군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군사기술이전을 미국이 손사래 친 경우는 상당히 많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미국무기 구매 리스트에 반드시 첨단기술이전이 포함돼야 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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