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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론조사 의미있지만 정치 책임성 강화가 먼저다

“국가 주요정책에 공론조사 남발하면 책임성 실종… 지역 단위 갈등 현안 해결에는 적용해 볼 만”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입장문을 통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원전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론화 경험을 통해 사회적 갈등 현안들을 해결하는 다양한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 문제를 숙의(熟議) 과정을 통해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공론조사에 대해 ‘숙의민주주의 모범’ ‘집단지성의 승리’ 등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청와대 쪽에서는 공론조사를 사회적 갈등사항의 해결 모델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공론조사가 일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안을 잘 모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거나 응답률이 저조한 여론조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이기는 하다. 표본 추출을 통해 선정된 대표성 있는 시민들이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학습과 토론, 숙의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주요 정책을 공론조사에 맡기는 것은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공론조사가 보완책이 되지만 남발하는 건 책임정치에 위배될 수 있다. 국가정책의 최종 결정은 선거를 통해 위임받은 대통령이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하는 게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야당과 원전 업계, 해당 지역 주민 등 건설 중단 반대 측을 설득해 공약을 이행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다. 어찌됐든 문 대통령은 공론조사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공약에 대한 책임을 비껴간 셈이다. 민감한 현안을 번번이 공론조사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공론조사에서 찬성이 나오면 추진 동력으로 삼고, 반대가 나오면 이를 핑계로 철회하는 건 무책임하다. 신고리 5, 6호기 건은 공론조사 결과가 건설재개 59.5%, 중단 40.5%로 비교적 큰 차이였기에 후폭풍이 적었지 박빙이었다면 또다른 갈등의 불씨가 됐을 수 있다. 다른 사안에서도 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안일한 생각이다. 게다가 공론조사의 결과를 제각각 해석해 또다른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

공론조사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해 당사자들이 공론조사에 찬성하고 결과에 승복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공론조사를 주요 국가정책에 확대하기보다는 풀뿌리민주주의 현장인 지역 단위의 갈등현안에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권은 이번 일을 정치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론조사 필요성이 제기되는 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공론위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여야는 진영논리에 빠져 아전인수식 딴소리를 내놓고 있다. 갈등현안을 토론과 타협, 조정을 통해 풀어내는 정치의 복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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