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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멍울 잡힌다면… 유방암도 ‘男의 일’

유방암 진료 男환자 年 500명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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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젖꼭지 밑에 뭔가 딱딱한 게 만져져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는데…. 남자가 유방암에 걸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요.”

지난해 11월 뜬금없이 유방암 진단을 받은 이모(57)씨는 12일 “불편함이나 통증이 없어 처음엔 병원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도 안 했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넘게 덩어리가 만져지자 병원을 찾았고 흔히 여성들이 하는 유방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처음엔 ‘양성 물혹’(낭종)이나 ‘여성형 유방증’(마치 여성처럼 가슴이 커지는 증상)이 의심됐다. 그런데 물혹을 없애는 수술 도중 아주 초기 유방암에 해당되는 ‘상피내암’(흔히 유방암 0기로 불림)으로 최종 진단됐다. 다행히 유관(젖분비 통로)에 암이 머물러 있는 단계로, 제거수술 후 항암과 방사선 치료 없이 정기 검진을 계속하고 있다.

없는 것 같지만 남성에게도 유방 조직(유선·지방 등)이 있다. 다만 여성들에 비해 양이 적고 젖꼭지(유두) 밑에 몰려 있다. 여성은 가슴 전체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남성 역시 드물긴 해도 유방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4년 신규로 발생한 남성 유방암 환자는 77명이다. 전체 유방암 환자(1만8381명)의 0.41%다. 그 수가 굉장히 적긴 해도 매년 60∼80명의 남성이 새로 유방암에 걸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유방암 진료 현황을 보면 남성 환자가 2013년까지 400명대였다가 2014년부터 3년째 500명을 넘고 있다. 지난해 유방암 진료 남성 552명 중 60대가 31.5%(174명)로 가장 많았고 70대(24.1%) 50대(23.4%) 80대 이상(12.0%) 등 순이었다.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은 50세를 넘긴 장·노년층으로 여성보다 늦게 발병한다는 얘기다.

서울아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정일용 교수는 “전체 암 중에서 그 수가 적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로 남성 유방암이 증가한다고 볼 순 없지만 앞으로 고령화에 따라 미세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여성암으로만 인식돼 남성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의심 증상이 있어도 병원을 뒤늦게 찾거나 유방암임을 알면서도 부끄러움과 어색함에 치료를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정 교수는 “모든 남성들에게 유방암 위험을 알리고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거나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된 경우 등 고위험군에 해당된다면 가족 안에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전자 돌연변이 있으면 100배 위험

남성 유방암의 가장 큰 위험인자는 ‘BRCA 유전자’의 돌연변이다. BRCA 유전자는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DNA 손상을 고치는 일종의 ‘수리공’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DNA 손상이 쌓여 여러 장기에 이상을 초래한다. 특히 남성에게 유방암과 전립선암을, 여성에게는 유방암과 난소암을 일으킨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BRCA 유전자 변이를 물려받은 남성은 일반 남성에 비해 유방암 발생 위험이 100배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한국유방암학회 조사에 의하면 일반 남성이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0.1%에 불과하지만 BRCA1 유전자 변이를 지닌 남성은 1.2%, BRCA2 유전자를 가진 남성은 7∼8%에 달했다. 가족 중에 2명 이상 유방암 환자가 있는 가계(가족성 유방암)에서는 이런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을 확률이 10∼20% 더 높다.

김모(37)씨는 지난해 12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의 가족 중에는 유방암 환자가 무려 4명이나 된다. 1남 7녀의 형제 중 막내인데, 누나 4명이 모두 30, 40대에 유방암에 걸렸다. 이모도 유방암 환자다. 이런 가계도를 눈여겨본 의사의 권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았고 BRCA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 김씨를 포함해 4명이 모두 변이 유전자를 지녔고 특히 40대에 암이 발병한 한 누나의 두 딸 중 1명도 보인자로 밝혀졌다. 아직 암에 걸리진 않았지만 김씨는 6개월 단위 검진을 빠지지 않고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자녀 등에게 불이익이 될까봐 유전자 검사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가족 간에도 비밀로 하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가족 중 여성이든 남성이든 유방암 확진을 받았다면 남성의 경우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남성과 여성 호르몬의 비율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병인 ‘클라인펠터 증후군’이나 방사선 노출, 비만 등도 남성 유방암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쪽 유방에 통증 없는 멍울 ‘의심’

유방암 증상은 남녀가 비슷하다. ‘한쪽 유방에 통증이 없는 멍울’이 만져지는 게 가장 흔한 증상. 유두에서 피 섞인 분비물이 나오거나 주변 피부색이 빨갛게(혹은 시커멓게) 변하고 습진이 생기거나 심하면 괴사가 일어나 움푹 들어간다. 이 단계 정도면 암이 최소 3기 이상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남성은 대개 젖꼭지 바로 밑에서 딱딱한 게 만져지지만 여성은 가슴 어디에서든 멍울이 만져질 수 있다.

유두가 들어가거나 유방이 커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여성형 유방증’과도 헷갈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사춘기나 노년에 호르몬 불균형 등으로 유방이 커지는 여성형 유방증은 ‘양쪽 유방에 통증이 있고 단단하지 않은 멍울’이 만져지는 게 다르다.

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이은신 교수는 “남성 유방암도 초기에 발견하면 수술(유두 포함 전부 절제) 등으로 치료가 비교적 잘된다. 다만 유전자 검사에서 암이 발견돼도 여성처럼 암 예방 목적으로 다른 쪽 유방 절제 수술이 권고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 대림성모병원 김성원 유방센터장은 “남성은 여성과 달리 유방암에 관심도가 낮기 때문에 암세포가 가슴근육이나 피부로 침범한 상태로 늦게 발견돼 치료 성적이 나쁜 사례도 적지 않다”면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성 유방암은 5년 상대 생존율이 여성에 비해 5∼10%가량 낮다.

남성의 경우 유방암 진단을 받았거나 암 판정을 받지 않았더라도 가족 중 변이 유전자가 발견됐다면 유전자 검사를 꼭 받아봐야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김 교수는 “또 35세부터는 매달 유방암 자가 진단(스스로 유방을 만져보는 등 체크)과 함께 6∼12개월 간격으로 전문의한테 유방 검진을 필히 받고 40세부터는 유방촬영 및 전립선암 조기 진단을 위한 선별검사(PSA)와 직장수지검사(항문에 손가락 넣어 전립선 촉진), 혈액검사도 매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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