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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탄핵 앞두고 국회에 진퇴 문제 위임한 朴 대통령

분노한 민심이 임기 단축 이끌어 내…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인식 너무 안이해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가 정하는 일정과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의 책임을 지기 위해 5년 임기를 단축하고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한 박 대통령은 국민적 저항에 의해 헌정사상 두 번째로 임기를 채우지 못할 전망이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당선된 이승만 대통령이 4·19혁명에 굴복해 같은 날 26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야한 이후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면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향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 원로들과 새누리당의 친박계 중진들이 요구한 ‘질서 있는 하야’를 박 대통령이 수용한 것이다. 야권 일각에서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럴 경우 헌법상 60일 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등 차기 정권을 창출하는 데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에서 현재로선 국정 혼란을 줄이는 데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 개인에게는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대통령을 그만두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치적에도 상처를 입히게 돼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나라 국민에게는 또 하나의 시민혁명, 광장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촛불민심을 통해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을 직접 거둬들이는 ‘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분노한 수백만명의 국민들은 지난 5주 동안 청와대를 에워싸고 박 대통령에게 이 나라를 더 이상 맡길 수 없으니 하야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야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의 공조로 국회에서 탄핵 위기에 처한 대통령으로서 강제로 임기가 멈춰지기보다는 제 발로 내려오겠다고 선언하는 게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대통령의 중도 퇴진은 스스로 불렀다. 그는 일개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씨와 국정을 공유하며 헌정질서를 무참히 파괴했다.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를 내놓으며 대통령을 직권남용, 강요, 공무상 비밀누설 범죄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강제 모금했으며 심지어 최씨가 추천한 사람을 대기업에 채용하도록 지시까지 했다. 국가 기밀 47건을 최씨에게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성실하게 받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며 버티기로 일관해 왔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지지율은 4%로 추락하며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런 지지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대통령은 회의를 주재하지 못했고 그만두겠다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제대로 주저앉히지도 못했다. 대통령이 국민적 신뢰와 함께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완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특별한 조건을 붙이지 않은 대목도 나름 평가할 만하다. 3차 대국민 담화를 앞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개헌을 고리로 한 임기단축 방안을 거론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이 개헌에 부정적 또는 소극적인 가운데에서 박 대통령이 개헌을 다시 꺼내면 정치적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국민이 국정농단 사건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식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또다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화법을 사용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와 4일 대국민 담화에서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의 사업을 선의로 진행했다는 의중을 밝혀 공분을 샀다. 검찰이 공범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들을 재차 절망하게 한다.

혹시나 대통령이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비해 명분 축적용으로 언급한 것이라면 가당치 않다. 정치권의 합의 절차에 따라 임기를 단축하고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에서 퇴진한다고 해서 현재 받고 있는 온갖 혐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기 중에만 헌법이 보장한 불소추 특권으로 기소되지 않을 뿐이다. 퇴진 후에는 엄정한 법의 잣대를 적용받아야 한다. 국민이 용서하고 말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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