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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와르르 무너지는 친박… ‘폐족’ 위기

최순실 게이트 직격탄… ‘脫朴 현상’ 가속화

[기획] 와르르 무너지는 친박… ‘폐족’ 위기 기사의 사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등 여권 대권후보로 꼽히는 인사들이 1일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최순실 게이트' 수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김 전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이동희 기자
친박(친박근혜)계가 생사기로에 섰다. 가장 강력한 정치파벌로 위세를 떨쳤으나 ‘최순실 게이트’로 순식간에 멸문(滅門)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친박 세력은 박 대통령이 2004년 3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로 선출되면서 태동했다는 게 정설이다. 박 대통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차떼기당’ 오명을 썼던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천막당사’로 위기를 돌파했다.

원조 친박의 진용은 2005년 1월 구성됐다. 김무성 전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유승민 의원이 대표비서실장으로 각각 임명됐고, 전여옥 대변인은 재신임을 받았다. ‘원조 친박 3인방’이 박 대통령과 모두 멀어진 것도 아이러니하다.

친박 핵심으로 활동했던 이혜훈 의원도 친박의 견제로 고생을 했다. 이 의원은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과 멀어진 인사들은 비선 라인의 존재를 깨닫고, 이를 멀리하라고 직언을 했다가 오히려 보복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비선 라인의 실세가 최순실씨 정도의 인사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로 갈렸다. ‘반(半)나라당’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이 당대표로 있을 때 당직을 맡았던 의원들과 영남권 의원들이 친박 캠프로 몰려들었다. 서청원 의원, 홍사덕 전 의원 등 중진들이 포진했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등은 ‘7인회’라는 원로그룹을 형성했다.

하지만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대통령이 패배하며 친박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친박계는 더욱 똘똘 뭉치며 ‘여당 내 야당’으로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친박계는 권력의 정점에 섰다. 이정현 대표와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과 김기춘 전 실장 등이 전면에 부상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독선적인 리더십과 소통 부족 등 비판에 시달렸고 ‘최순실 게이트’로 생명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1인 리더십에 크게 의존한 계파였다.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보안을 중시하며 2인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박 대통령이 무너지니까 이를 수습할 2인자도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친박계의 현실이다. 친박 또는 범박계로 불렀던 의원들의 ‘탈박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친박계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빼앗긴 이후 스스로 ‘폐족’이라고 불렀던 친노(친노무현)에 이어 ‘제2의 폐족’이 되고 있다. 하지만 친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극적으로 부활하며 더불어민주당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친박이 친노처럼 부활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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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사진=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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