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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기호] 게이트의 진짜 주인

이번 파문은 ‘박 대통령 측근 게이트’… 위임받은 권한을 개인에게 넘겨준 대통령

[청사초롱-이기호] 게이트의 진짜 주인 기사의 사진
다소 거친 비유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여기 한 교수가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자, 이후 오랫동안 한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도 지인의 도움은 계속 이어진다. 종합시험에서부터 학위 논문까지 지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해서 교수로 임용되고 대학 강단에까지 서게 된 그는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인의 조력으로 학생들을 가르쳐나가기 시작한다. 지인은 그를 대신해 학생들의 시험 문제를 내고, 학생들의 성적을 채점한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실험실습비를 자신의 용돈으로 쓰고,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근로장학생 자리를 자신의 조카들에게 대신 내어준다.

그 모든 사실을 학생들이, 학교 당국이 알게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징계를 받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백 번을 양보해서 설령 그 교수가 지인의 전횡을 몰랐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 교수는 징계받지 않고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을까? 사과하면 학생들이 아아, 그랬구나, 도움을 받았구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다시 그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학교 당국의 징계가 문제가 아니라 그는 이미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교수가 된다. 그러면 더 이상의 가르침은 없다. 가르침이 없으면 그 손해는 온전히 등록금을 낸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교수에게 징계가 필요한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에둘러 말할 필요 없이 지금 우리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오는 저 ‘최순실 게이트’는 그 작명부터가 잘못되었다. 왜 그것이 ‘최순실 게이트’인가. 그것은 정확하게 말해 ‘박근혜 대통령 측근 게이트’이자 ‘박근혜 대통령 비선 국정농단 게이트’다. 이 정확한 명명은 왜 중요한가? 자칫 우리가 이번 사건의 핵심을 잘못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태의 원인을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에게만 돌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는 실제로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언론에서는 최순실씨가 관여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만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그 많은 보도를 듣고 있자면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이 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휘두른 사건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들어서 아는 것처럼, 대통령의 사과문에는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 문제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그녀의 딸이 어떻게 승마협회에서 권력을 휘둘렀고 대학에 진학했는지, 재산 형성 과정은 어땠는지, 그런 것은 나와 있지도 않다. 어쩌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대통령의 사과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허락이나 검증 없이 특정한 개인에게 그 권한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위탁한 것, 그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게이트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는 명명백백해지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 사과문을 읽어나갈 때까지만 해도 ‘퇴진’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 단어가 몰고 올 우리 사회의 혼란과 충격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사이 그 생각은 조금씩 수정되었는데, 그건 바로 요즈음 들어 자주 회자되는 러시아 왕조의 요승 ‘라스푸틴’ 이야기, 그 이야기의 결론 때문이다. 권력을 손에 쥔 채 수많은 전횡을 저지른 라스푸틴이 제거된 이후에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두 달 남짓 권력을 유지했다. 그래서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러시아라는 나라 자체가 아예 몰락하고 말았다. 황제는 아버지에게 권력을 위임받아 물러날 곳이 없었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우리에게 헌법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기호 광주대 교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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