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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이명희] 14% 대 55% 지지율의 의미

소통과 불통의 정치가 보여준 숫자 ‘슈퍼 덕’ 대통령은 요원한가

[돋을새김-이명희] 14% 대 55% 지지율의 의미 기사의 사진
최순실 사태로 한 주가 시끄러웠던 지난 주말 아침. 한 신문에서 눈길을 끈 것은 1면에 실린 14%와 2면에 실린 64% 숫자였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과 정권 말기 미국 퍼스트레이디 지지율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 관련 스캔들이 계속 불거지자 이를 덮기 위해 반짝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개헌 카드는 반나절도 되기 전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최씨 태블릿PC에서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95초에 불과한 연출된 사과에 민심은 더 들끓었다.

TV를 통해 최씨의 ‘인형놀이’와 그 대상이 된 대통령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참담했다. 최씨가 외교·안보 등 국정 전반은 물론 청와대와 정부, 대기업 인사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의 돈까지 빨아들인 사실을 접하며 정권에 대한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과 ‘순실공화국’ ‘순실의 시대’ ‘최순실 아바타’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시국선언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성난 민심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대통령의 공식행사 이벤트와 발언들이 최순실씨에 영향 받은 주술과 종교 때문이었다?’ 이 황당무계한 음모론에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지경이다.

한 신문은 1면에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라고 제목을 달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니 ‘최순실’ 뒤에 숨을 수만도 없게 됐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뽑으면서 국민들이 기대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동안 가족이나 측근 비리로 물러난 역대 남성 대통령들과는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처럼 되풀이된 정권과 대기업의 흑역사도 이 정권에선 없을 줄 알았다. 2002년 불법 대선자금을 모은 ‘차떼기당’이나 세무조사나 검찰수사를 들이대며 대기업 팔을 비틀고, 그래서 대기업 회장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는 일은 더 이상 안 볼 줄 알았다. ‘원칙과 신뢰’를 유난히 강조했던 대통령이기에 말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수만명이 지난 주말 청계광장에 촛불을 켠 것은 구중궁궐에 자신을 가둔 채 눈과 귀 막고 살던 대통령이 ‘베프’(베스트프렌드)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과 배신감 때문일 거다.

박 대통령은 그제 온갖 의혹에도 감싸고돌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을 교체하고 문고리 3인방의 사표도 수리했다. 본인의 셀카 사진이 태블릿PC에서 나왔는데도 모른다고 거짓말하던 최씨도 전격 귀국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본인이 진정한 사죄와 읍참마속의 결기를 내보이지 않는 한 한 번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선을 일주일 앞둔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부러울 뿐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원 유세하는 미셸 오바마의 지지율이 지난 8월 64%에 이어 이달에도 59%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29%)와 클린턴 민주당 후보(4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퇴임 3개월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은 55%로 8년 임기 중 평균 지지율이 가장 높다. 트럼프 때문에 반사이익을 본다는 일부 분석도 있지만 TV에 나와 막춤을 추는 미셸과 햄버거를 사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는 ‘보통사람’ 오바마를 미국인들은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레임덕(lame duck)이 아니라 지지율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덕(super duck)’으로 불리며 떠날 때 박수 받는 대통령을 보는 것은 한국에선 요원한 걸까.

이명희 디지털뉴스센터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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